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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대통령 선거 ===
2007년 1월 당시 범여권의 유력 후보로 꼽히던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했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9&aid=0000054946</ref> 열린우리당에서 개편된 [[대통합민주신당]]은 곧바로 경선에 진입한다. 본인을 비롯하여 유시민,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이 출마했으나, 유시민은 첫판부터 사퇴한다. 당초 손학규가 유리한 것으로 보였으나 이 과정에서 박스떼기 논란 및 국민통합추진본부의 차량 동원 의혹이 발생하였고, <ref>이 당시 국민통합추진본부장이 [[이재명 (1964년)|이재명]]이었다. 이 국민통합추진본부의 많은 인원이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재명 (1964년)|이재명]]은 대표를 하고 있었으며, 이 중 미키루크로 알려진 이상호씨도 있었다.[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Print/121397] {{웨이백|url=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Print/121397 |date=20170816011459 }}[http://v.media.daum.net/v/20071215103208348]</ref> 결국 경선은 정동영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이에 위협을 받은 친노는 한명숙이 이해찬을 지지하며 사퇴하는 등 최대한 단일대오를 구축하려 했으나, 조직력 면에서 다소 유리했으며 반노 이미지를 강조한 정동영은 극적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0077716</ref>
 
그러나 당시 참여정부의 실정 등으로 사실상 여당(노무현의 탈당으로 인하여 아직 법적으로 여당은 없었음)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율은 매우 처참했고, 정동영 본인의 지지율 또한 20%에도 달하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위기 상태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36674</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0250852</ref> 심지어 이회창이 출마하기 전 또한의 여론조사 또한 이회창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50%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달리며 당선 가능성이 유력해 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기도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으며, 또다른 범여권의 주자인 [[이인제]]와 [[문국현]], [[권영길]] 등과의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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