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남해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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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는 [[발해]]의 중요도시인 5경 가운데 하나이다.
 
[[옥저]]의 고지에 설치되었으며 옥주(沃州), 청주(睛州), 초주(椒州)의 3개주를 관할했다.<ref>《신당서》219권 열전 제 144 북적열전 발해 [https://zh.wikisource.org/wiki/%E6%96%B0%E5%94%90%E6%9B%B8/%E5%8D%B7219#%E6%B8%A4%E6%B5%B7]</ref>
남경 남해부에 대한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발해유적이 잇따라 출토되어 온 [[함경남도]] [[함흥]]을 남경 남해부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다산 [[정약용]]은 오직 [[함흥]]에만 남경 남해부에서 난다던 해초가 나는 것을 근거로 '함흥 남경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함경남도]] [[북청]]에서 발해 유적들이 발굴됨에 따라 '북청 남경설'도 지지를 얻고 있다. {{언제|날짜=2015-7-29}}
 
[[발해]]멸망이후 [[압록부]], [[장령부]], [[부여부]], [[정리부]]와 함께 [[발해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으나 [[요나라]]가 이들을 진압한 이후 남해부의 주민들을 지금의 [[랴오닝 성]] [[안산 시]], [[하이청 시]], [[다스차오 시]]일대로 강제이주시키고 [[해주 (요)|해주]]를 설치했고 그땅은 완전히 [[여진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ref>《요사》 권38 지리지 2 동경도 해주 [https://zh.wikisource.org/wiki/%E9%81%BC%E5%8F%B2/%E5%8D%B738]</ref>
남경 남해부는 [[발해]]의 주요 교통로중 하나인 신라도(新羅道)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토막글|한국사}}
거란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인해 그위치가 잊혀졌다. [[해동역사]]의 저자 [[한진서]]등 일부 실학자들은 지금의 [[북청군]], 혹은 [[함흥]]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ref>《해동역사》 속집 지리고 9 발해 남해부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N&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1433A_0820_010_0010]</ref>
 
이후 [[북한]]정권이 고고학조사를 한 결과 지금의 남경남해부가 [[함경남도]] [[북청군]] 하호리 청해토성에 있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남경 남해부는 [[발해]]의 주요 교통로중 하나인 신라도(新羅道)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토막글|한국사}}
 
[[분류: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