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임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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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에 이르러서도 국난 시에 무장으로 활약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국지적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한 인물들이 있으며, 한국전쟁시에는 제18연대장으로 이후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에 이른 [[임충식 (1922년)|충식(忠植)]] 등의 인물이 있다.
 
== 헌원씨와의 관계 ==
[[파일:Yellowemperor2.jpg|섬네일|220px|오른쪽|[[헌원씨]]]]중화민국에서 발간한 임성본원휘고<small>(任姓本源彙考)</small>에서는 중국 헌원 임씨의 호<small>(顥, 109세)</small>가 장흥 임씨의 시조와 동일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러가지 이견이 있어 확실한 정립이 필요하다.
 
=== 정설(定說) ===
장흥 임씨의 시조 [[임호 (고려)|임호]](顥)는 중국 [[송나라]] 소흥부(紹興府) 출신으로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 [[공조]] 소속의 정6품 벼슬)과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는데<ref>출처: 승석가부해동설(乘石舸浮海東說)</ref>, 당시 중국의 정세가 혼란하자 난을 피하여 [[고려 정종 (10대)|고려 정종]] 때 정안현(定安縣; 현재의 장흥군 관산읍(冠山邑)의 임자도(任子島 또는 荏子島)에 잠시 정박하였다가, 그곳 [[천관산]] 아래에 있는 당동(堂洞)에 정착하였다.
 
따라서 장흥 임씨의 원조는 [[도교]]의 시조이자, [[중국]]의 건국 신화에 나타나는 제왕으로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군주로서 문명의 창시자로 숭배되고 있는 [[헌원씨]]로 알려져 있다. 중화민국임씨종친회에서 발간한 임성본원휘고에는 [[헌원씨]]의 8자인 우양<small>(禹陽)</small>이 임씨<small>(任氏)</small>로 사성<small>(賜姓)</small>되어 헌원계<small>(軒轅系)</small> 임씨의 시조로 인정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ref>일반적으로 헌원계 성씨로는 희(姬), 유(酉), 기(祁), 기(己), 등(滕), 침/짐(葴), 임(任), 순(荀), 희(僖), 길(姞), 현(儇), 의(衣)가 알려져 있다.</ref> 여기에서 우양<small>(禹陽)</small>의 107세인 약<small>(鑰)</small>의 손자 호(<small>顥, 109세)</small>가 바로 장흥 임씨의 시조이다.<syntaxhighlight>
유웅국군 소전(少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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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조 황제헌원(黃帝軒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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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세 우양(禹陽, 8子) 창의(昌意) 보(寶) 용묘(龍苗) 청양(靑陽) 휘(暉) 이팽(夷彭) 창림(濸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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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2세 우호(禹號) 중양(仲陽) 총 25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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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3세 우경(禹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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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4세 요양(徭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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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5세 번우(番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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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6세 해우(奚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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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7세 해중(奚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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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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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0세 이(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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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1세 경(燝) 욱(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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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2세 관(雚) 양(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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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3세 염삼(念三) 염구(念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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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4세 정방(廷芳) 익(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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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5세 (생략) 성(誠) 혜(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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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6세 수(壽) 원지(元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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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7세 (생략) 약(鑰, 紹興始祖 절강성 소흥부 자계현 소흥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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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8세 충(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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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09세 호(顥, 東來韓國始祖 長興任氏遠祖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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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계 110세 전(銓) 관(瓘, 歸河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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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옹(定翁) 연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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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가설은 송나라 소흥부의 호(顥)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는 전(銓)이고 둘째아들(季子)은 관(瓘)으로, 계자인 이 관이 '귀하남불명('歸河南不明:황하강 남쪽으로 돌아가 생사를 모른다)'으로 중국의 임씨 세계표에 기록되어 있는점에 바탕한다. 즉 이로 미루어, 시조 호(顥)가 종통을 이을 장자는 중국에 남겨두고 계자인 관(瓘)을 데리고 고려국으로 왔으며, 고려에 입국하면서 관(瓘)이 의(懿)로 개명되었다고 일각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도래설의 추정 논거로는 정안(현재 장흥) 지역은 후삼국시대 선종 9산([[오교 구산|禪宗 9山]])의 하나인 [[가지산 (전라남도)|가지산]]의 소재지로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였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맡길 임씨 문중에서는 이와 같은 사료를 바탕으로 민간 교류를 시작하였다. 2016년 4월 한국 임씨 대표단(장흥 임씨, [[풍천 임씨]])이 중화 임씨의 성지인 중국 제녕시 임성구를 방문한데 이어 2016년 8월에 중국 맡길 임(任)씨 기업총상회 대표단이 장흥 임씨의 발상지인 한국 장흥군을 답방하였다.
 
=== 반론 ===
하지만 장흥 임씨 족보 외의 사료나 유물 상으로 송나라 도래설이 고증된 것은 아니다. 또한 한국 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고려 이래 사족들은 대개 모화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서 찾았다는 데서 현재 족보상에는 그 시조가 중국 출신이 많다. 이는 대개 후대에 와서 조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조선 초기 또는 중기에 중간정리단계를 거친 조선 전기 족보는 대체로 사실에 충실한 반면 18세기와 19세기 이후에 창간된 족보는 당대인들의 수록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 성관의 유래와 선대세계에 관한 서술은 크게 사실과 어긋나 있다. 몇가지 반론의 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정경공의 묘지명을 보면 공은 '나주 정안현 사람이다’라고 분명히 출신지를 밝히고 있다.
* 고려사 등의 사료를 보면 정경공 이전에도 任氏姓(임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고려에 살고 있었음이 밝혀져 있다.
** 삼국시대에도 맡길 임씨 성을 사용하는 인물의 기록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신라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7558 임영리(任永里)] 장군이 있었다. 또한 [[임나|임나(任那) 가야]] 지역 인물들을 당시의 왕이 임생(任生)이라 칭한 기록이 남아있다.
* 고려사 등에서는 문헌이 확실한 정경공(懿)을 장흥임씨의 1세조로 하였다.
** 서기 1979년 장흥임씨 己未大同譜 발간 전까지는 장흥임씨의 시조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 다만 역대 족보에서 諱 '灝’가 중국에서 고려시대에 이주하였을 것으로만 추정하여 諱 '灝’를 원조로 하고 있다.
 
==== 과학적 고증 (분자인류학) ====
문헌공파 임대진(任大晋)의 자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30세 손의 SRY(Sex Determining Region Y)를 유전자 분석한 결과 O-CTS201로 판별이 난 것이 보고 되었다. O-CTS201의 하부에는 크게 2가지 세부 분류가 있다.하나는 한반도, 만주, 일본 등지에서만 주로 검출이 되는 SK1702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본토에서만 주로 검출되는 M159이다. SK1702는 약 6천년전에 한반도와 만주 지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5%를 상회하는 비율로 나타나는 부계 유전자 하플로 그룹이다. 향후에 세부 분류에 대한 검사와 보다 많은 유전자 샘플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다면 장흥 임씨의 기원에 대한 논쟁을 과학적으로 고증할 수 있다.
 
==== 시조 임호의 휘자에 대한 고증: '顥'와 '灝' ====
 
* 정경공 묘지명이 발견되어 이를 자세히 검토한 결과 '顥’가 바로 정경공의 부친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 두 분은 父子之間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역대 장흥임씨 족보에서 원조(遠祖)라 부르던 분의 휘자(諱字)가 '灝’였는데 정경공 묘지명에서는 '顥’ 字로 기록되어 있다.
* 대만에서 입수한 전기 임성본원휘고에서 살펴보니 역시 중국소흥임씨의 시조인 임약의 손자가 바로 '任顥’로 되어 있어 정경공 묘지명에서 부친으로 나타난 '顥’와 이름이 일치함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연대를 추정해 보니 묘지명의 연대와 임성본원휘고 상의 연대가 일치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 따라서 정경공 묘지명에 나타난 '顥’와 임성본성휘고에 나타나는 '顥’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맺었고 또한 임충빈(任忠贇)의 묘지명과 임익돈의 묘지명에서도 모두 동일하게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장흥 임씨의 기미대동보 때부터 시조공의 諱字(휘자)를 '灝’에서 '顥’로 변경하여 표기하게 된 것이다.
 
중국임씨 헌원계 109세 '顥’와 장흥임씨 시조 '顥’ 선조의 이름이 동명(同名)이라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동일인(同一人)이라는 고증이 안되어있다.
 
==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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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ikh826 장흥 임씨 대종회]
*[[풍천 임씨]]와는 족내 통혼을 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집안 모두 족보상으로족보 중국상으로 절강성동일 소흥부지역 출신을 원조로 모시고 있는 등 상호 간의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풍천 임씨와 장흥 임씨 문헌공과의 관계에 대한 고증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