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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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른슈타트 시대(1703-1707) ===
18세로 학교를 졸업한 바흐는 곧 자활할 필요에 쫓겨, 1703년 4월부터 한때 [[바이마르 궁정]]의 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일하고, 그해 8월에는 아른시타트의아른슈타트의 교회에 오르가니스트로 채용되었다. 이 시대에는 북독일의 뤼베크를 찾아가 대작곡가 [[디트리히 북스테후데]](1637-1707)의 작품과 오르간 연주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으며, 그 영향은 이 시기의 화려한 오르간곡에 명확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아른시타트아른슈타트 시대는 오르간의 연주와 작곡에서 바흐가 개성적인 양식의 기초를 굳힌 중요한 시대인데, 그를 감독하는 입장에 있었던 성직회의(聖職會議)와 자주 충돌하여, 1707년 6월 새로운 직장을 찾아 같은 중부독일의 도시 [[뮐하우젠]]으로 갔다. 뮐하우젠에서는 교회 오르가니스트로서 활약하는 한편 [[교회 칸타타]]의 작곡에도 힘을 들여 제71번, 제131번, 제106번 등 초기 칸타타의 명작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루터파 내부의 정통파와 경건파 사이의 분쟁에 말려들어 겨우 1년 만에 이 곳을 떠나게 되었다.
 
=== 바이마르 시대(1708-1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