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샤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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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작곡가 루치아노 샤이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이론과 작곡 등을 배웠다. 이어 [[페루자]]와 [[밀라노]]의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동시에 [[시에나]] 음악원에서는 프랑코 페라라에게 지휘를 배웠다. 스무 살 때인 1973년에는 고향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부지휘자로 발탁되어 경험을 쌓았고, 1978년에 같은 오페라극장에서 지휘자로 공식 데뷰했다.
 
이어 [[빈 국립오페라]]와 [[뉴욕 시|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의 [[로열 오페라|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단에 객원으로 출연해 신예 오페라 지휘자로 절찬을 받았다. 오페라 외에 콘서트 지휘자로도 활동을 시작해, 1980년에 27세의 나이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을 영국 음반사 데카에 취입해 화제가 되었다.
 
1982년에는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서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고, 이어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와 [[볼로냐 시립극장]]의 지휘자를 겸임했다. 베를린 재임기에는 당시 상당히 뜸하게 다루어지던 [[안톤 브루크너|브루크너]]의 초기 교향곡들이나 [[자코모 푸치니|푸치니]]의 관현악 작품들, [[구스타프 말러|말러]]의 미완성 유작인 교향곡 제10번의 데릭 쿡 연주회용 보완판을 과감히 공연하고 녹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