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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군사 반란|12·12 반란]]과 [[1980년]] [[5·17 쿠데타|5·17 계엄령]]으로 정권을 잡아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소위 '[[3S 정책]]'(Screen, Sex, Sports) 을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32200289105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3-22&officeId=00028&pageNo=5&printNo=1509&publishType=00010 프로야구 당국지원으로 화려한 출범] [[한겨레]] 1993년 3월 22일</ref> [[1981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정서, 여가선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프로 스포츠 한번 해봐라"라고 지시를 내렸다.<ref name=SprotsKoreaFantasy>정희준, 《스포츠 코리아 환타지》 개마고원</ref> 실무를 담당한 이상주 당시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은 대통령의 지시대로 대한야구협회와 대한축구협회에 프로화를 타진하고, 당시 야구인이었던 이호헌과 이용일이 18쪽 분량의 '프로야구창립계획서'를 만들게 되었다.<ref>[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93531/language/ko-KR/Default.aspx 많은 원로들의 노력이 프로야구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깨진 링크|url=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93531/language/ko-KR/Default.aspx }} 《엑스포츠뉴스》, 2009년 1월 28일</ref> 축구계가 프로화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보고한 것과 달리 야구계는 "정부 보조 한 푼 없이 프로 야구를 출범시킬 수 있다"라고 보고했고, 이 제안이 당시 집권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되었다. 이후 각 지역을 연고지별로 분할하고 창단 기업을 물색하게 되었다.
 
프로 야구에 참여할 기업을 선정할 때는 모기업의 조건은 재무구조가 건실한 상시노동자 3만명 이상의 대기업이었다. 초기 기획단계에서 연고지 배정은 서울은 [[문화방송|MBC]], 부산은 [[롯데그룹|롯데]]였다.<ref name=SprotsKoreaFantasy/> 정치인들은 자신의 혈연, 지연, 학연들을 모조리 동원해 그룹총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그에 의해 [[두산그룹]]이 자사 주류 [[OB맥주OB 맥주|OB]]의 이름을 내걸고 충청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정계인물들과 관계가 돈독했던 [[해태제과식품|해태]]의 박건배 회장이 전라권에 해태를 참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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