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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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놓고 아직은 개화당 동문이던 [[민영익]]의 집에 묄렌도르프를 비롯한 온건파(수구당) 중진들과 급진개화파들이 모였다. 스테이크와 포크 나이프를 앞에 둔 채로 김옥균은 묄렌도르프를 논리적으로 몰아붙여 입도 못떼게 했다. 이는 두 파의 반목이 표면에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삼정이 문란한 조선의 현실에서 기득권을 그대로 두고 근대화를 위한 돈을 마련할 방법은 밖에서 꿔오든가 아니면 찍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구파의 뜻대로 [[당오전]]은 발행됐고 물가는 폭등했다. <ref>[[당오전]]은 당시까지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의 5배에 달하는 액면가로 상평통보 5전과 동일한 액면가로 가치가 정해졌지만 시중에서는 [[상평통보]]와 동일한 액면가로 통용되고 있었다.</ref> 게다가 지방관들은 상평통보와 당오전의 단위가 냥으로 같은 점을 악용해, 조세를 당오전 액면가의 5배로 유통되던 상평통보로 걷어놓고 나라에는 당오전의 액면가대로 대납하는 과정에서 차액을 착복한 후 중앙고관대작들에게 상납했다.
 
김옥균은 잘못된 통화 정책으로 엔화 환율이 1 대 2.5 정도에서 1대 8로 급락하며 더욱 악화된 대일(對日) 무역 역조 및 정부 재정 적자에 대해 상소를 멈추지 않았지만, 오히려 민씨 일파를 비롯한 수구파, 묄렌도르프들은 '김옥균과 개화파가 발목을 잡기 때문에 정책 효과가 더디 나타나는 거'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