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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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경찰]]과 [[군인|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이 배포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하다가 사건 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에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어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끝내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24시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
 
== 사건의 발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