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만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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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쑨원]]은 1911년 [[중화민국]]을 건국할 때 반[[청나라|청]] 선전물을 유포하기 위해 홍콩에서 만화를 제작하는 방법을 썼다. 이후에는 초기 과도정치와 전쟁기의 역경을 반영한 만화들이 제작됐는데 개중에는 《진상화보》(真相畫報, 1912)과《인감》(人鑑, 1920)을 들 수 있다. <ref name="Wendy" /> [[홍콩의 일제점령기|일제가 홍콩을 점령]]한 1941년에는 모든 만화 제작활동이 중단됐다 . 1945년 일제가 패배하면서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간의 내전으로 대혼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만평 중 하나인 인간화회의 《저시일개만화연대》(這是一個漫畫年代, 1948)는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기록해두고 있다.<ref name="Wendy">Wong, Wendy Siuyi. [2002] (2001) ''[[Hong Kong Comics: A History of Manhua]]''.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New York. {{ISBN|1-56898-269-0}}</ref>
 
중국 내 혼란은 50년대와 60년대까지 이어졌고, 그로 인해 본토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해 왔는데, 특히 [[베이비 붐]] 때문에 홍콩이 주요 만화시장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영향력이 컸던 성인용 만화잡지는 《만화세계》(漫畫世界)로, 최부수 판매를 기록한《[[카이 삼촌]]》(財叔)이 연재됐다. 한편으로는 일본 만화와 대만 만화가 10센트의 해적판 떨이로 팔리면서 홍콩 만화에 도전을 걸어왔다.<ref name="Wendy"/>《[[노부자]]》(老夫子) 등의 만화는 홍콩 만화업계를 살리는 데 꼭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