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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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남부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졌을때 그는 게오르기 주코프 소련 육군 최고 사령관 대리와 천왕성작전을 계획했다. 소련군 110만명이 비밀리에 스탈린그라드의 남부와 북부에 모이기 시작했다. 11월 18일에 소련군이 대규모반격을 개시하여 헝가리군과 이탈리아군을 격퇴시키고 독일 제 6군을 포위해버렸다. 12월에 에리히 만슈타인원수가 이끄는 독일군이 겨울폭풍작전으로 독일 6군을 구출하기 위하여 스탈린그라드 40km까지 왔지만 돈강 북부에서 소련군이 대규모반격을 해버리는 바람에 후퇴했다. 이후 그는 소련 원수로 진급했다.
1943년에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바실렙스키는 돈 강 상류, 도네츠 지대, 크림반도, 벨라루스, 발트연안국에 대한 소련군 공세를 입안하고 조정하여, 1945년 4월의 [[쾨니히스베르크]]의 점령으로 전쟁을 마쳤다. 1945년 7월에 그는 소련군 극동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지휘하고 만주지역과 한반도 북부에 주둔중인 일본군의 항복을 받았다. 1945년 8월 하순의 어느날, 바실레프스키에게 스탈린으로부터 북한을 소련의 뜻에 맞게 이끌어 갈 조선인 지도자를 추천해 보고하라는 긴급 지시가 내려왔다. 바실레프스키는 극동군 산하 88특별여단 소속의 대위 김일성을 추천하였으며, 9월 초순 스탈린은 김일성을 면접하고서 '합격' 판정을 내렸다. <ref>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53쪽</ref> 전쟁 이후 그는 소련의 국방장관이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가 집권한 이후, 바실렙스키는 실권을 잃고 결국 은퇴하였다. 그가 죽은 후 국가에 대한 기여가 인정되어 크레믈린벽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