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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는 신라 때 마리현(馬利縣), 이안현(利安縣)이었다. 고려 때 부곡(部曲)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이안현이 되기도 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 안음현(安陰縣)으로 개칭되었다. 영조 때 안의현(安義縣)이 되었다.
 
안의현은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에 해당하며, 읍치는 안의면 금천리, 교북리 일대에 있었다. <ref>[http://e-kyujanggak.snu.ac.kr/geo/insp/insp_view02.jsp?setid=2627817&pos=0&total_df=1&uci=GR33623_00&c1=01&c2=&c3=&fType=&sType=&sWord=%3F%3F%3F%3F%3F 안의현읍지(安義縣邑誌) - 안내정보],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ref>
 
영조 4년이던 1728년,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안의의 [[정희량 (1728년)|정희량]]은 영조가 임금이 된 뒤 벼슬 등에서 차별받아 온 소론 일파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청주, 안음, 거창, 합천, 삼가 등 여러 고을에 이르렀지만, 거창에서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 체포돼 참수되었다. 영조는 안의현을 함양과 거창에 분속시켰고, 일제에 의해 안의면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 이름을 잃어버렸다. <ref>신정일, [http://weekly.donga.com/List/Series/3/all/11/75860/1 영조 때 ‘정희량 반란’두고두고 수난과 상처], 주간동아</ref>
 
== 행정 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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