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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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칠리아 왕과 메시나 조약을 맺어 탄크레드는 조안나에게 그녀 몫의 유산과 자유를 되찾아주고, 리처드는 탄크레드를 [[시칠리아의 군주|시칠리아의 국왕]]으로 인정하였다. 또한 리처드의 후계자를 조카인 브르타뉴 공작 아서로 명기하여 탄크레드의 딸과 결혼시키도록 했다.
 
[[키프로스 섬키프로스섬]]에서 약혼녀인 베렝가리아와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키프로스 태수가 그녀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리처드는 비잔티움 제국군과 전투를 벌여 [[키프로스]]를 점령한 다음, [[1191년]] 5월 12일 베렝가리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6월 8일, 리처드는 필리프 2세와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와 연합하여 [[아크레]]를 공략하였지만, 레오폴트 5세의 깃발을 찢어 그를 모욕했기 때문에 레오폴트 5세는 이러한 처사에 화를 내며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