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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당초에 고령지역사 [변한] 12국 중의 반로국(半路國, 반파국의 오기) 일본서기의 반파국(伴跛國)이었다. 반파국은 초기에 내륙 깊숙히 자리해 구야국 주도의 해상무역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는 대신에 내륙 산간일대의 농업생산력과 옛 [[야로현]](합천군 야로면)의 철광을 기반으로 주변 소국들을 점진적으로 복속시키며 발전하고 있었다. {{출처|[[400년]]에 [[가락국]]이 [[고구려]]-[[신라]]연합군에게 공격을 받아 거의 패망하다시피하자 고구려의 공격에 피해가 적었던 반파국은 [[가락국]]의 망명객들과 제철기술을 받아들이고 가야연맹의 맹주로 떠올라 대가야국을 세웠다.|날짜=2015년 2월 10일}} 초기에 전라도 동부지역-[[기문 (옛 지명)|기문]](己汶)<ref>남원, 임실</ref>, [[달이]](達已)<ref>여수</ref> [[물혜]]<ref>광양</ref>, [[사타(옛 지명)|사타]]<ref>순천</ref>-로 진출해 [[가락국]]의 쇠퇴로 상실한 지금까지의 대외교역창구였던 [[고 김해만]]일대 대신에 새로운 교역창구로 [[섬진강|다사강]]유역을 확보<ref>KBS 역사스페셜 제015편 제4의 제국 대가야, 백두대간을 넘다</ref>한 대가야는 [[479년]]에는 [[남제]]에 가야왕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내고 [[481년]]에는 [[나·제 연합군]]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는 등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이후 세력을 회복한 백제와의 분쟁에서 다사강 이서의 영역을 모두 잃는 것을 시작으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해 신라와 [[백제]]의 압박으로 인하여 [[안라국]] 중심의 남가야 세력의 이반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야의 분열을 초래한데다 [[554]]년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침입했지만<ref>[[관산성 전투]]</ref> 크게 패하고 오히려 [[562년]]에 [[이사부]] 장군의장군이 이끄는 신라군의 침공으로 결국 멸망했다.
 
== 정치·경제·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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