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예쁘게 바꿈
41번째 줄:
'''배영수'''(裵英洙, [[1981년]] [[5월 4일]] ~ )는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김상엽 (야구인)|김상엽]], [[김진웅]]에 이어 전 [[삼성 라이온즈]]의 우완 강속구 투수 계보를 이은 에이스 선발 투수이자 전통 프랜차이즈 스타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10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112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ref>
 
== 아마추어 시절 ==
[[경북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최고 구속 147km/h의 공을 던졌지만,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제대로 투구하지 못했다. 이에 언론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당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끈 투수 [[장준관]]을 지명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예상을 깨고 [[200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1차 지명했으며, [[1999년]] 11월 팀 고졸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인 2억 5,000만원에 입단했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 2001 시즌 ===
[[2001년]] 2년차에 13승을 거두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 2002 시즌 ===
[[2002년]] 6승으로 주춤했으나, [[한국시리즈]]에 출전해 우승했다.
=== 2003 시즌 ===
[[2003년]] 다시 13승을 거두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 2004 시즌 ===
[[선동열]]을 수석 코치로 영입한 [[2004년]]에는 17승(16선발승)<ref>{{뉴스 인용
| 제목 = 개인 성적
61번째 줄:
| 확인날짜 = 2019-03-17
}}</ref>(최다 선발승은 [[다니엘 리오스|리오스]] [[게리 레스|레스]]가 기록한 17선발승) 2패,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다승 및 승률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4년 만에 정규 리그 MVP로 선정됐다. 특히 당시 팀 타율 1위(0.275)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지만<ref>동아일보 - 2004년 10월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16954 "팽팽한 투수전 현대-삼성 또 무승부"]</ref> 타선이 무득점에 그쳤고, 연장 11회에 [[권오준]]으로 교체돼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2005 시즌 ===
개막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무사사구 완봉승<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7650 배영수, 프로 8번째 개막 완봉] 《조이뉴스24》, 2005년 4월 2일 작성</ref>을 거두며 쾌조의 스타트로 전반기에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7월에 왼쪽 발목을 다친 이후로 하락세를 보이며 전년도보다 안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고, 147탈삼진으로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의 정규 시즌 1위 등극에 기여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6.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 2006 시즌 ===
유독 부족한 타선 지원과, 불펜진 난조로 인해 8승 9패에 그쳤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2000년대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2점대 방어율을 달성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팔꿈치 부상을 안고도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의 권유로 데포메드롤<ref>일명 대포 주사라고 한다. 스테로이드 계열의 금지 약물인‘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됐다.</ref>이라는 강한 진통제를 맞으며 경기를 했다. 상태가 안 좋았으나 151&nbsp;km/h의 직구를 던졌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나 진통제를 다량으로 복용해 그의 팔꿈치는 만신창이가 됐다. 시즌 후 11월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2007년]] [[1월 27일]] LA 컬란조브 외과 병원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다.<ref>스포츠 춘추 - 2010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93 "삼성 배영수, “나는 기교파 투수가 아니다”"]</ref><ref>[[스포츠 칸]] - 2009년 6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6012028383&sec_id=510101 "임창용 “슬라이더 · 포크볼 각이 나를 세웠다”"]</ref><ref>[[동아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9100265 "수술의 기적?… 피나는 노력만 있을 뿐"]</ref><ref>[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LCT=2&AID=173086&PG=17 재활 중인 삼성 라이온즈 투수 배영수 - 수술보다 우승이 하고 싶었다]{{깨진 링크|url=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LCT=2&AID=173086&PG=17 }} 《스포츠 2.0》, 2007년 5월 22일 기사</ref>
팔꿈치 수술로 인한 재활 훈련으로 인해 [[2007년]]에는 단 1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팔꿈치 수술 전 직구 최고 구속은 [[2006년]] [[8월 2일]] [[SK 와이번스]]전에서 기록한 155&nbsp;km/h이고 슬라이더는 144&nbsp;km/h였다. 수술 전 정규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이 145&nbsp;km/h였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그의 구위는 좋지 않았으나 토미 존 서저리 수술 이후 회복 속도는 다른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빨랐고 재활 1년만에 마운드에 복귀했다.
=== 2008 시즌 ===
시범 경기에는 최고 구속 146km까지 던졌지만, 시즌이 가면 갈수록 직구의 구위는 회복되지 않았고, 시즌 중반기 최고 구속은 138km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주 무기인 슬라이더와 변화구로 맞춰 잡는 피칭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직구 평균 구속 138~140km를 회복했고 최고 구속은 145km를 기록했다. 복귀 후 첫 시즌에 9승을 달성해 토미 존 수술 1년차로 믿기지 않는 회복 속도를 보였다.<ref>동아일보 - 2009년 1월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1160276 "배영수, 첫 연봉 삭감… 오기 ‘불끈’"]</ref>
=== 2009 시즌 ===
전문가와 야구 팬들의 예상 및 기대와는 달리 1승 12패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너무 빠른 복귀로 인해 수술 부위에 무리가 갔고, 구속은 140km도 안 나오는 편이었다.
=== 2010 시즌 ===
[[2010년]] FA 자격을 얻어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시도했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2년간 최대 1억 7,000만엔(23억원)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며, 입단 테스트까지 성공적이었지만 메디컬 테스트 결과 간 수치 문제로 부적격 판정을 받아 계약이 무산됐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2년 간 계약금 6억, 연봉 2억, 옵션 3억에 계약하며 잔류했다.
시즌 성적은 6승 8패에 그쳤으나 [[두산 베어스]]와의 포스트시즌 4차전에서 1.1이닝동안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1점차 세이브를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 2011 시즌 ===
시즌 초반에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시즌이 갈수록 구위가 저하돼 6승 8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 2012 시즌 ===
지난 3시즌 간 부진했던 그는 [[2012년]] 용병 [[미치 탤벗]]과 [[브라이언 고든]]을 선발 투수로 영입해 입지가 흔들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며 스프링캠프 때 일본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오래 남아 훈련하며 시즌을 대비했고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5선발로 낙점됐다. [[4월 14일]] 첫 선발 등판 경기였던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고, [[8월 19일]]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2012년 시즌 첫 번째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됐다. 또한 [[8월 26일]] [[LG 트윈스]]전에서 [[오지환]]을 상대로 역대 25번째 1000탈삼진을 기록했으며, 이날 7이닝 무실점 승리 투수가 돼 역대 23번째 1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12년만의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9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자신의 최다 투구수인 140구를 던지며 9이닝 6탈삼진, 3실점으로 역투했으나, 상대 투수였던 [[윤석민 (1986년)|윤석민]]의 완봉으로 인해 패전 투수가 됐다. 특유의 맞춰 잡는 피칭과 위기 관리 능력으로 2번의 완투를 하는 등 긴 이닝을 소화했다. 마지막 등판 경기인 [[10월 2일]] [[LG 트윈스]]전을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시즌 12승을 거두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완급 조절과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투구로 12승 8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수술 이후 첫 3점대 평균 자책점과 두 자릿 수 승리를 거두며 부활했다. 가을에 특히 강했던 그는 [[2012년]] [[10월 28일]] [[한국시리즈]] 3차전 선발로 등판했으나 3이닝 3실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승 이후 [[아시아 시리즈]] 1차전인 [[Lamigo 몽키스|라미고]]전에 선발로 등판해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이 무득점에 그쳐 패전 투수가 됐다.
=== 2013 시즌 ===
5년 만에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낙점됐으나, 만루 홈런을 두 번이나 허용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음 경기인 [[NC 다이노스]]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특히 [[8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6.2이닝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김시진]]의 통산 최다 승 기록을 경신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92719 배영수, 라이온즈 32년사에 큰 획을 긋다] [[OSEN]]</ref> 또한 [[9월 7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으로 선발 승을 거둬 팀의 1위 자리를 지켜냈으며, 9구단 체제 도입 이후 최초이자 이 시즌의 유일한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98271 배영수, 9구단 시대 최초 전 구단 상대 승리 영예] MK 스포츠</ref> 전년도에 비해 컨디션이 들쭉날쭉한 모습을 많이 보였으나, 타선의 활약과 특유의 노련함으로 [[크리스 세든]]과 함께 14승을 거두며 [[2004년]] 이후 9년 만에 다승왕을 차지했다. [[2013년]] [[10월 28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나 1.1이닝 2실점으로 강판됐고, 타선이 1득점에 그쳐 패전 투수가 됐다.
 
== [[한화 이글스]] 시절 ==
[[2014년]] [[12월 3일]] 타 구단 협상 마지막 날에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부름으로, 계약 기간 3년, 총 21억 5,000만원(계약금 5억원, 연봉 5억 5,000만원)에 FA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44759&date=20141203&page=3 한화, 배영수와 3년 21억5000만원 전격 계약] - <<OSEN>> 2014년 12월 3일 확인</ref>
=== 2015 시즌 ===
시즌 전 기대와는 달리 정규 시즌에 선발 투수로써 불안감을 노출하며 4승 11패, 7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 2016 시즌 ===
[[2016년]] [[8월 1일]] [[KIA 타이거즈]]전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됐으나, 부상으로 하루 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 [[두산 베어스]] 시절 ==
[[2018년]] [[11월 30일]]에 입단하였다.<ref>[https://www.yna.co.kr/view/AKR20181130097000007?input=1195m 현역 최다승 투수 배영수, 두산 입단…연봉 1억원] - 연합뉴스</ref>
 
== 국가대표 경력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때 국가대표 선수로 참가했다.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사토자키 도모야]]를 상대로 슬라이더를 이용해 3구 삼진을 잡으면서 호투했다. 당시 직구 구속이 143&nbsp;km/h 정도로 약간 느려 직구로 일본 타자들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자신감으로 일본 타자들을 아웃시켰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는 투구 밸런스를 제대로 잡지 못해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대회로 병역을 해결했다.
 
100번째 줄:
* 2017년 4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보크 논란이 일어났다. 이후 7월 17일, 8월 20일 등 유독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부정 투구 행위가 잦았고, [[kt 위즈]]전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부정 투구 행위가 발각되는 등 프로 선수 답지 못한 행동을 보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185&daum_check=&naver_check=1|제목=[SQ이슈] '화려한 부활' 한화이글스 배영수, 그와는 별개의 문제 '부정투구' 논란|날짜=2017-04-28|언어=ko|확인날짜=2017-08-21}}</ref><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148&daum_check=&naver_check=1#_enliple|제목=[SQ이슈] 한화이글스 배영수 또 부정투구 논란, 공을 유니폼에 문질렀다고?|날짜=2017-08-21|언어=ko|확인날짜=2017-08-21}}</ref> 결국 2017년 8월 22일에 [[KBO 리그|KBO]]로부터 로진을 옷에 묻히는 행위가 부정 투구라고 판정됐고 추후 이 부분이 또 발각되면 징계를 내린다고 해 네티즌들로부터 그 동안의 부정 투구는 봐 주는 것이냐며 비난을 받았다.
 
== 별명 ==
[[삼성 라이온즈]] 시절 별명은 푸른 피의 에이스였고, '개막전에 만루 홈런 두 방 맞은 투수'의 줄임말인 '개만두', '한 경기에 만루 홈런 두 방 맞은 투수'의 줄임말인 '한만두', [[스즈키 이치로]]가 '30년 망언'을 해 그가 [[스즈키 이치로]]의 둔부에 빈 볼을 던진 이후로 '배열사'라고도 불렸다.<ref>데일리안 -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62904 ‘청주본즈’,‘사못쓰’…별명 알면 더 재미난 프로 야구]</ref>
 
234번째 줄:
[[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