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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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고려 개국 ===
초명은 [[삼능산]](三能山)이다. 후에 [[태조 왕건]](太祖 王建)으로부터 [[평산]]을 관향으로 하사받고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된다.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협력하여 [[왕건]]의 집에 가서 “폭군을 폐위하고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천하의 대의이니 청컨대 공은 [[은]](殷)과 [[주나라|주]](周)의 옛일을 본받아 실행하셔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왕으로 추대하였다.
 
“나는 충의를 신조로 삼고 있으니 왕이 비록 난폭할지라도 어찌 감히 두 마음을 가지겠는가?”라면서 [[왕건]]이 일단 거절하였다. 그러나 [[삼능산|신숭겸]] 등은 “시기란 만나기 어렵고 알고도 놓치기 쉬운 것인데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 법입니다.”라고 밝혀 자신들의 거사가 천명임을 강변하였다. 결국 거사를 [[왕건]]이 허락하자 그를 [[고려]]의 [[고려 태조|태조]]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