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제1차 회의: 제8대 대통령 선거 ===
{{본문|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 선거}}박정희1972년 대통령은12월 대의원22일, 200명박정희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대통령은 대의원 515명의 추천을 받아 [[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 선거|제8대 대통령 선거]]에 단독 입후보하였다.<ref>{{웹 인용|url=http://photo.heraldcorp.com/ptview.php?ud=20141215143325AUI2030_20141215144418_01.jpg|제목=[포토섹션]정권 ‘거수기’ 역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첫 선거|언어=ko|확인날짜=2018-10-09}}</ref>
 
대통령은 재적 대의원의 과반을 득표해야 함으로, 당선 요건은 2,359명 중 1,180표를180표 이상을 득표하는 것이었다. 1972년 12월 23일, 열린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1차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재적 대의원의대의원 과반을 과반인넘는 2,357명의 투표를 받아 제8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1337262|제목=중앙일보|성=|이름=|날짜=1972년 12월 23일|뉴스=박정희 대통령을 선출 제8대로 통일주체국민회의 1차 회의서|출판사=|확인날짜=2018년 10월 9일}}</ref>
 
박정희 대통령은 이 날 대통령 선거에 앞서 국민회의 운영위원회 위원 50명을 지명하였으며, 이들 중 곽상훈 위원을 1973년 1월 29일 운영위원장으로 지명하였다.
 
=== 제2차 회의: 제1기 간선제 국회의원 선거 ===
제9대 국회의 개원을 앞둔 1973년 3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제1기 간선 의원 후보 73명, 예비후보 14명 등을 일괄 추천하였다. 간선 의원은 재적 대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 대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당선이 확정된다는 규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1973년 3월 7일 제2차 집회에서 명단 전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해 통과시켰다.<ref>{{웹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1342315|제목=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의원후보73명공고. 박대통령일괄추천으로 국민회의사무처서|성=지면보기|이름=입력 1973 03 05 00:00 종합 1면|날짜=1973-03-05|웹사이트=|출판사=|언어=ko|확인날짜=2019-04-04}}</ref><ref>{{뉴스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1342517|제목=중앙일보|성=|이름=|날짜=1973년 3월 7일|뉴스=대통령추천 73명 의원선출 지역별 국민회의 찬2,251 반82 무효21표|출판사=|확인날짜=2018년 10월 9일}}</ref> 제2차 회의는 시도별시·도별 지역 회의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투표에는 재적 대의원 2,359명 중 2,354명이 참여해 99.8%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불참자는 해외 체류 중이던 서울의 서정귀·남궁연 대의원, 부산의 이재헌 대의원, 경북의 정타용 대의원 등 4명과 와병 중이던 전남의 정병용 대의원 등 5명이었다.<ref>{{웹 인용|url=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30700329201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3-07&officeId=00032&pageNo=1&printNo=8442&publishType=00020|제목=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확인날짜=2019-04-18}}</ref> 재적 대의원의 과반의 지지가 필요한 대통령 선거와 달리, 간선 의원 선거는 재적 대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 대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했음으로, 이 선거에는 출석자 2,354명의 과반인 과반인 1,178표가 필요했다.
 
=== 제3차 회의: 제2기 간선제 국회의원 선거 ===
역시 지역별로 소집된 제3차 회의는, 제1기 간선 의원들의 임기가 1976년 3월 11일 종료됨에 따라 후임 간선 의원들을 선출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1976년 2월 14일 국민회의에 제2기 유정회 의원 후보 73명과 예비후보 5명의 명단을 제출했는데, 그 중 50명은 기존 1기 의원들이 그대로 재추천됐고 나머지 23명은 새로운 인물들이었다인물로 교체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news.joins.com/article/1429326|제목=유정회 2기 의원 새 후보는 23명|성=지면보기|이름=입력 1976 02 14 00:00 종합 1면|날짜=1976-02-14|웹사이트=|출판사=|언어=ko|확인날짜=2019-04-04}}</ref>
 
이에 따라 대의원들은 1976년 2월 16일 시도별로시·도별로 모여 제3차 회의를 개최하고 박정희간선 대통령이의원들에 추천한대한 제2기일괄 의원들의찬반 당선을투표를 확정했다실시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429406|제목=유정회 2기 의원 73명 당선확정|날짜=1976-02-16|뉴스=중앙일보|언어=ko-KR|확인날짜=2018-10-09}}</ref> 이때 대의원 14명은정수 불참했는데2,359석 서울의 남궁연,56석이 경기의사퇴 김춘, 전북의사망으로 조상래공석이 되어 재적 대의원 수는 2,303명이었는데, 그 중 3명은 해외 체류로체류, [[임영신]]11명은 와병을 11명은이유로 병으로불참하여 불참했다투표에 참여한 대의원은 2,289명이었다.<ref>{{웹 인용|url=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2160032920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2-16&officeId=00032&pageNo=1&printNo=9349&publishType=00020|제목=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확인날짜=2019-04-18}}</ref>
 
재적 대의원은 대의원의 사망, 사퇴 등으로 2,303명으로 줄었으나, 2,000명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그대로 둔다는 규정 탓에 보궐 선거가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 중 2,289명의 대의원들이 출석하여 통과에 필요한 대의원 수는 1,14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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