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85번째 줄:
 
11월 2일 프라하에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소식이 전해지자 이로써 30년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친정을 개시한 크리스티나 여왕의 정책으로 인해 화평교섭에 새로운 전개가 일어나게 되었다.
 
== 결과 및 영향 ==
이 전쟁은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조직을 넘어서 전 [[유럽]]의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그 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유럽]]의 국제정세를 규정하는 것이 되었다. [[1648년]] 체결된 역사상 최초의 다국가간 조약이었던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서도 전쟁은 최종적으로 결판나지 않아, 그 결과 거의 300개에 달하는 연방국가의 분립상태가 확정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지만, 그것은 망령과도 같이 단순히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국가로 남아 있게 된다.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가는 독일 왕이 아닌 [[오스트리아 대공]], 후에 [[오스트리아 황제]]로서 18세기, 19세기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 및 용병에 의한 약탈로 독일 국토는 황폐해졌고, 당시 유행하던 [[흑사병]] (페스트)의 영향도 더해져 인구는 격감해 교전국간의 경제에도 엄청난 마이너스 효과를 주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투는 30년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어, 1659년 [[피레네 조약]]에 의해 겨우 종결되었다. 이 조약은 「루시용, 아르투아 등의 할양」,「[[루이 14세]]와 [[펠리페 4세]]의 왕녀 [[마리아 테레사]]의 결혼」,「마리아 테레사는 50만 에스쿠도를 지참금으로 갖고 오는 대신 그 대가로 스페인 왕위계승권은 포기한다」는 조건이 들어 있었다. 이 전쟁을 거치며 스페인의 패권이 상실되고, 프랑스의 패권시대가 시작되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30년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으나, 속국 트란실바니아 후(侯)의 개입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30년 전쟁에 관여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을 압박했다.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