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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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다 ====
일곱 살 때 '바다'라는 [[시 (문학)|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는데,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三眉子集)이라는 책을 내었다. 삼미(三眉)라는 별명은 어릴 적에 걸렸던 천연두가 나으면서 생긴 흉터 때문에 눈썹이 세 개 생겼다는 뜻이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해(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맏형수 [[경주 정씨]]와 서모 또는 새엄마 김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릴 적에 [[천연두]]에 걸렸으나, 왕족 출신의 명의 [[이헌길]]의 진료로 살았다. 정약용은 훗날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을 집필하고, 이것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조선]]의 생명을 구한다. 또한 정약용은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 결혼 ====
[[1776년]] [[4월 10일]]([[음력 2월 22일]])에 승지 혼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과 매부 [[이승훈]]을 만났다.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었으며, [[이익 (학자)|성호 이익]]([[1629년]]~[[1690년]])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인물이었다. 이들에게서 [[이익|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실학]]사상의 토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