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1551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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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부사는 군사를 이끌고 분전하였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갑옷 위에 관복을 입고 북쪽의 임금께 절을 올린 후 성문의 누각에 단정히 앉은채 왜병에게 피살되었다. 적장이 그의 충절에 탄복하여 송상현을 살해한 자기 부하를 잡아 죽이고, 일본장수인 [[소 요시토시]] 등이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 지내 주었다 한다. 그의 첩인 금섬도 그를 따라 순절하였다.<ref>신흠, 『상촌집』 권31, 송동래전</ref>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으므로 일각에서는 그가 [[정발 (1553년)|정발]]과 함께 [[일본]]군에 투항하여 [[일본군]] 장수가 되었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선조실록 32권, 선조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1월 25일(신사) 1번째기사 "유영길·김수를 인견하고 적병의 숫자, 영·호남의 전투 상황 등을 묻다"</ref> 그 후 조정에서 그 아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제사를 지내 주었다./9&7&$¥£오아시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