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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우는 뇌진탕을 일르키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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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군 하서면(경기도 [[안양시]]) 출신인 원태우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사를 준비했다. 때마침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 관광을 다녀온 후 서울로 되돌아간다는 첩보를 입수한 원태우는 안양에서 진을 치고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전복시키기 위해 레일에 바위를 깔아놓는 것을 시도했으나 겁을 먹은 이만려가 바위를 치웠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도 원태우는 어떻게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돌을 들고 안양의 서리재고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지나가자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졌다. 원태우가 던진 돌은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의 창문을 깨고 정확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머리에 명중되었으며 이때 깨진 유리파편 중 8조각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박혔다. 전치 1주의 상해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뇌진탕을는탱운ㄴ탕을 일으키는 등 생명이 위독한 상태가 되었으나 신속하게 응급치료를 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며, 원태우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다. 이 사건은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후에 원태우는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겪었는데 온몸에 고문으로 인한 상처자국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매우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중근]] 등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계속 생겨나게 되었으며 한반도에서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원태우는 이후에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착취로 인하여 매우 힘겹게 살아가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68세. 기일은 7월 2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