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론 우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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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포지션은 [[1루수]]이며 우투우타이다. 당시 한국 프로 야구에서 외국인 선수 제도를 첫 도입하던 [[1998년]]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2002년]]까지 두산에서 활동하였다 [[1998년]] 한국 프로 야구에 데뷔했을 당시 단일 시즌 42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종전까지 [[장종훈]]이 보유하고 있었던 [[KBO 리그|한국 프로 야구]]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41개, [[1992년]])을 경신하였다(현재의 한국 프로 야구 시즌 최다 홈런은 이승엽이 [[2003년]]에 기록한 56개이다). [[1998년]] 시즌 후, 사상 최초로 외국인 정규리그 최우수 선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한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 MVP, [[2001년 한국시리즈]] MVP를 석권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이 트리플 크라운은 프로야구 창단 이래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약했을 당시 대부분의 시즌에 3할 타율 - 30홈런 - 100타점에 가까운 성적에 팀의 중심 타선으로 기여함으로써 가장 성공적인 [[KBO 리그]]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김동주 (야구인)|김동주]], [[심정수]]와 함께 '우동수 트리오'의 최강 클린업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KBO 리그]]에서의 별명은 그의 피부색과 팀 마스코트를 결합한 ''''흑곰''''이었다. [[2002년]] 시즌에 건강 등의 문제로 약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소속팀 [[두산 베어스]]와의 재계약 협상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 프로 야구로 진출하게 된다.
 
한편, 우즈의 입단 과정에서 [[OB 베어스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 당시 주동자들<ref>{{뉴스 인용
| 제목 = OB선수 집단이탈 왜 일어났나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0700329119003&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9-07&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193&publishType=00010
| 출판사 = 경향신문
| 저자 = 정기수
| 쪽 =
| 날짜 = 1994-09-07
| 확인날짜 = 2019-05-27
}}</ref>중 우즈와 포지션이 겹쳤던(1루수) 선수들이 대거 정리됐는데 [[김형석 (야구 선수)|김형석]]은 [[1997년]] 시즌 뒤 OB에서 방출된 후 삼성 유니폼을 입었으나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자 [[1998년]] 시즌 뒤 은퇴했으며 [[추성건]]은 [[1999년]] 시즌 후 두산(전신 OB 포함)에서 방출된 뒤<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야구] SK 추성건, 8년만에 출루율 팀내 1위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5&aid=0000004515
| 출판사 = 국민일보
| 저자 = 류강훈
| 쪽 =
| 날짜 = 2000-06-01
| 확인날짜 = 2019-05-27
}}</ref> 같은 시기 롯데-현대에서 각각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손동일]], [[손차훈]], [[1998년]] 시즌 후 한화에서 방출된 뒤 한때 야구를 포기하기도 했던 [[길배진]]과 함께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그 주축 선수들을 필두로 창단된 신생 SK로 이적하여 [[2001년]]까지 재적했고 [[김종석 (1971년)|김종석]]은 [[1995년]] 우승에 기여를 했지만 [[1996년]] 허리부상으로 인해 어렵게 잡은 주전 자리를 빼앗겼으며 급기야 우즈한테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ref>{{뉴스 인용
| 제목 = 김종석 방망이 불붙었다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5&aid=0000363010
| 출판사 = 한국경제
| 저자 = 고경봉
| 쪽 =
| 날짜 = 2001-04-16
| 확인날짜 = 2019-05-27
}}</ref>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 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파동까지 겹쳐 동계훈련에 빠져 [[김인식 (1947년)|김인식]] 감독으로부터 미움을 사 2군생활을 전전했으며 결국 [[2000년]] [[6월]] 한화 유니폼을 입었고 신인 시절 스승이었던 [[이광환]] 감독이 부임한<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야구]한화 김종석 무서운 '늦바람'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58450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종석
| 쪽 =
| 날짜 = 2001-04-13
| 확인날짜 = 2019-05-27
}}</ref> [[2001년]] 처음이자 마지막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으나 [[2002년]]부터 갑작스런 부진에 빠졌고 급기야 [[2003년]] 부임한 [[유승안]] 감독에 의해 본격적으로 등용된<ref>{{뉴스 인용
| 제목 = 베테랑 중심 한화…'세대교체 시기 놓칠라'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9&aid=0000021307
| 출판사 = 데일리안
| 저자 = 이상학 객원기자
| 쪽 =
| 날짜 = 2007-02-16
| 확인날짜 = 2019-05-27
}}</ref> [[김태균 (1982년)|김태균]]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었으며 [[유승안]] 감독이 성적 부진 뿐 아니라 2년 계약 종료로 팀을 떠난 [[2004년]]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로 풀려<ref>{{뉴스 인용
| 제목 = [하프타임] 한화 투수 한용덕 은퇴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81&aid=0000016760
| 출판사 = 서울신문
| 저자 =
| 쪽 =
| 날짜 = 2004-10-13
| 확인날짜 = 2019-05-27
}}</ref> 은퇴했다.
 
=== 일본 프로 야구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