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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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 또는 '''비잔틴 제국'''({{llang|en|Byzantine Empire}}), '''동로마 제국''' 또는 '''로마 제국'''({{llang|en|Eastern Roman Empire}})은 [[중세 시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이후의 [[로마 제국]]을 일컫는 명칭으로, 수도는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였으며 [[로마 제국의 황제|로마 황제]]가 다스렸다. 로마 제국으로도 불렸고 주민과 주변 나라 사람들은 ‘로마니아’({{lang|el|Ῥωμανία}}){{sfnm|1a1=Millar|1y=2006|1pp=2, 15|2a1=James|2y=2010|2p=5|3a1=Freeman|3y=1999|3pp=431, 435–37, 459–62|4a1=Baynes|4a2=Moss|4y=1948|4p=xx|5a1=Ostrogorsky|5y=1969|5p=27|6a1=Kaldellis|6y=2007|6pp=2–3|7a1=Kazhdan|7a2=Constable|7y=1982|7p=12|8a1=Norwich|8y=1998|8p=383}}라고 부르기도 했다.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을 구분하는 것은 그저 긴 로마 제국의 역사를 편의상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오스만을 비롯한 주변 나라들도 비잔틴을 엄연히 '로마 제국'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동로마와 로마 제국을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는 것은 서유럽 중심의 역사 사관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소위 '비잔틴 제국'이 성립한 시점을 정확히 잡을 수는 없으나 보통 [[콘스탄티누스 1세]]가 [[아나톨리아]]의 [[니코메데이아]]에서 [[보스포로스 해협]]의 [[비잔티움]]([[콘스탄티노폴리스]], 혹은 '새로운 로마')으로 천도한 서기 330년이 분수령이다.{{#tag:ref|공문서에서 "새로운 로마"로 쓰인 첫 사례는 기원후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법령에서 나온다. 여기서 이 말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가 로마 총대주교좌보다 밑에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쓰인다.<ref>{{harvnb|Benz|1963|p=176}}.</ref>|group="주"}}
 
4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이 로마 제국의 [[동방 그리스와 서방 라틴]]이라는 전환점으로 이어졌다. 324년부터 337년까지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는 제국을 재조직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고, [[크리스트교]]를 합법화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집권한 시기에 크리스트교는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고 여러 다른 종교 행위는 금지되었다. 마침내 [[헤라클리우스]] 시기에 제국의 행정과 군사가 재조직되고 라틴어를 대체해 그리스어가 공식언어로 채택되었다.{{sfnm|Ostrogorsky|1969|1pp=105–07, 109|Norwich|1998|2p=97|Haywood|2001|3pp=2.17, 3.06, 3.15}} 이로 인해 로마 제국은 이어지고 있었고 그 전통은 유지되었지만, 현대 사학자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중심이 콘스탄티노플이었다는 것과 라틴 문화보다는 그리스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동방 정교회]]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고대 로마]]로부터 구별하고 있다.{{sfnm|1a1=Millar|1y=2006|1pp=2, 15|2a1=James|2y=2010|2p=5|3a1=Freeman|3y=1999|3pp=431, 435–37, 459–62|4a1=Baynes|4a2=Moss|4y=1948|4p=xx|5a1=Ostrogorsky|5y=1969|5p=27|6a1=Kaldellis|6y=2007|6pp=2–3|7a1=Kazhdan|7a2=Constable|7y=1982|7p=12|8a1=Norwich|8y=1998|8p=383}}
 
제국의 국경은 여러 차례 변화했으며 쇠퇴와 수복의 순환된 과정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기에 제국은 역사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서지중해 일대를 회복함으로써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이 때 제국은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남부, 시칠리아, 크레타를 점령하고 2세기 동안 이 지역을 다스렸다. [[제7차 비잔틴-사산 전쟁]]으로 인해 제국의 자원은 소모되었고, 이로 인해 7세기 [[초기 무슬림 정복전쟁]] 당시 제국이 상당한 영토를 잃는 원인이 되었다. 무슬림의 정복 전쟁으로 인해 비잔티움 제국은 이집트, 시리아와 같은 부유한 지역을 잃었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id=iSWPAgAAQBAJ |title=Warfare, State And Society in the Byzantine World 560–1204 |work= |page=47|isbn=978-1-135-36437-3 |author1=Haldon |first1=John |last2=Haldon |first2=Shelby Cullom Davis 3.0. Professor of European History Professor of History Hellenic Studies John |date=2002}}</ref> [[마케도니아 왕조]] 시기에 제국은 다시 팽창했고, 2세기 동안 지속되는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를 맞이했지만,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튀르크]]에게 패배하면서 [[소아시아]]를 잃게 되었다. 이후 튀르크족은 이 전투를 계기로 [[아나톨리아]]에 정착하게될 발판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