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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앨라배마주)|몽고메리]]의 덱스터 애버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맡게 된다. 당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침례교회]]에서 목사안수는 받았지만, 모어하우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회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1955년]] [[백인]]들은 '몽고메리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흑인은 탈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려고 하였고, 그는 이를 반대하였다. 그러던 중 [[1955년]] [[12월]]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시 경찰서에 체포,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펼쳐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운동을 지도하고, 다른 [[흑인]] 및 양심적인 백인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하여 5만의 시민이 동참했다. [[흑인 해방]]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1956년]] [[12월]]에는 [[미국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법의 위헌판결을 얻어낸다. 이후 [[애틀랜타]]의 침례교회 목사로 있으며 [[미국]] 각지의 [[인권]]운동을 지도했다. 당시 마틴 루터 킹 2세와 같이 인종차별반대운동에 참여한 동역자로는 [[장로교]] 목사인 [[윌리엄 슬로언 코핀]]([[1924년]]-[[2006년]]), [[침례교]] 목사인 [[랠프 애버내시]]([[1926년]]-[[1990년]]) 등이 있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 투쟁 활동에 대해 그는 '자유를 향한 위대한 행진'([[1958년]])이라는 책을 통해 보고서 형식으로 남기기도 했다. [[1957년]] [[미국]] 남부의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목사 및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남부 그리스도교도 지도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SCLC)의 조직, 결성에 참여하였다. 그는 비폭력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러나 [[맬컴 엑스]] 등은 그의 운동이 지나치게 타협적이라고 비토했다. 일부의 흑인 과격파는 [[흑인]] [[이슬람]] 지도자인 엑스를 지지하며 그의 비폭력 흑인운동에 반발했는데, 왜냐면 그들에게 온건한 성격의 흑인 인권 운동은 백인들과의 타협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투옥과 석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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