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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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
선거 기간선거전 내내 [[전두환·노태우 법적 심판#1997년 대선 당시 대선후보들의 사면 공약 논란|전두환·노태우 사면 공약 논란]]을 비롯해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호화 빌라 논란, 며느리 원정 출산 의혹, 김대중 후보의 [[김대중 비자금조성 의혹|차명 비자금 의혹]] 및 6.25 당시 병역 문제 의혹 등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되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1858_13449.html 97대선 제2차 TV 합동 토론회, 병역 공방 치열] 1997.12.7 mbc</ref>
 
* 이회창: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 이회창: 호화 빌라 논란
* 이회창: 며느리 원정 출산 의혹
* 김대중: [[김대중 비자금조성 의혹|차명 비자금 의혹]]
* 김대중: 6.25 당시 병역 문제 의혹
 
=== 전두환·노태우 사면 ===
[[1997년]] [[4월 17일]]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형 집행이 확정되자 집권당인 [[신한국당]]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신한국당의 [[김윤환]] 고문과 대구경북쪽 인사들을 비롯한 구 여권 출신 대선주자들은 종전부터 사면에 찬성하는 쪽에 섰다.
 
법무부는 대통령 특별 사면의 경우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추징금 문제를 집중 검토했다. 노태우 씨의 경우는 추징금에 해당하는 재산을 대부분 보전 처분해 상관이 없지마는, 전두환 씨는 추징금 2,295억원의 10% 정도만 확보되어 있고 전두환의 경우 재산 추적에 진전이 없어, 나머지 2천억 원에 대해서는 집행 불능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법무부는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형집행 정지도 검토했으나, 이 경우 사실상 언제든지 다시 수감될 수 있어 두 전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보여졌다. 가석방은 형기의 1/3분을 마쳤을 때만 가능해 애초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두 사람을 풀어주는 길은 특별 사면밖에 없지만 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무부는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 준비는 대선이전에 완료되었고 김영삼과 정부의 말 한마디면 곧바로 사면될 수 있었던 형국이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1557_19482.html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팔일오 사면 실무 검토] 1997.7.22 mbc뉴스 </ref>
 
김대중 후보는 8월 31일 국민 화합을 위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할 것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20910100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20&pageNo=1&printNo=2363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사면결정金(김)대통령 임기내" 金大中(김대중)총재 국민회의] 1997.8 .31 동아일보</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3100329101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31&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03&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현정권서 사면해야” 김대중총재 밝혀] 1997.8.31 경향신문</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72_19482.html 김대중 총재,김대통령 임기내 전직대통령 사면 요청] 1997.8.31 mbc 뉴스</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8482_19482.html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시기 이견] 1997.9.1 mbc뉴스 </ref>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역시 9월 1일 추석 전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의 이같은 공약을 전해들은 [[전두환]]은 이회창에게 감사 인사를 할 만큼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329104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24&publishType=00010 옥중 전씨 사면건의 고맙다, 이회창 대표에 구두 메세지] 1997. 9.24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40020910500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4&officeId=00020&pageNo=5&printNo=23659&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1997. 9. 24 동아일보</ref>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329104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32&pageNo=4&printNo=16303&publishType=00010 빠른 시일 내에 전노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1997.12.16 경향신문</ref><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096_6187.html 97대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경남,부산 유세,집권후 정계] 1997.12.15 mbc</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1600289104003&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12-16&officeId=00028&pageNo=4&printNo=3066&publishType=00010 이인제 pk다지기] 1997.12.16 한겨레</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329101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32&pageNo=1&printNo=16070&publishType=00010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대해 입장 밝힐 예정] 1997.4.8 경향신문</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600209101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6&officeId=00020&pageNo=1&printNo=23501&publishType=00010 李(이)대표全(전)|盧(노)씨 사면건의 검토 金潤煥(김윤환)고문"대법 刑(형)확정후 실시 이미 건의"]1997.4.6 동아일보</ref>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800329101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8&officeId=00032&pageNo=1&printNo=16218&publishType=00010 全(전)·盧(노)씨 대선前(전) 사면 검토] 1997.9.18 경향신문</ref>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는 개탄의 분위기가 쏟아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100329105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1&officeId=00032&pageNo=5&printNo=16214&publishType=00010 한가위'정치오염'] 1997.9.11 한겨레신문</ref>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 다만, 이는 김영삼 대통령이 먼저 제안하고 김대중 당선자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221_6187.html 전두환과 노태우 특별사면 결정] 1997.12.20 mbc</ref> 이런 사면에 대해 낙선한 [[이회창]]후보 측근도 "이회창쪽에서도 추석전 조기사면을 요구한 만큼 [[김대중]]당선자도 사면을 주장했으니 당연한조치"라고 평했고 낙선한 [[이인제]]후보쪽에서도 전두환·노태우 사면에 대해 "이제는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에 여야 모두긍정적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ref>
 
== 여론 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