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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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였고, 이후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자리잡았으며, 2008년 총선 때 압승을 거두어 여대야소 정국을 형성하였다. 이후 [[2008년 대한민국 촛불 시위|촛불 시위]]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등 잇따라 당이 존폐위기에 놓였으나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였고 같은 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승리하여 여당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7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박근혜]]가 대통령직으로부터 탄핵되자 새누리당은 여당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이에 따라 상당수 지지자들이 이탈하면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통령 선거]]와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패배하였다.
 
본래 한나라당 내에는 전신인 민주자유당에서부터 시작된 3개의 계파, 곧 민주정의계(민정), 통일민주계(민주), 신민주공화계(공화)가 존재했고, 그 외에도 소장파들이 여러 개 존재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계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2000년대 초반에는 보수 계열과 민주 계열이 있었으나, 이 중 민주 계열은 2003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이어 2008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친 박근혜 계열이 [[친박연대]]로, 또한 보수 계열의 의원들이 [[자유선진당]]으로 이동하여 분열이 계속되었다. 한편 당의 주요 축이던 친이계, 친박계 간의 갈등이 계속되기도 했으며, 2011년 이후 친이계가 몰락하면서 친박계가 당권을 쥐게 되었다. 이후 당명을 '''새누리당왜인당'''으로 바꾸고, 상징색도 이제까지의 파랑에서 빨강으로 바꾸었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선진통일당]]을 흡수하면서 보수 정당의 분열이 종식되었고 제도권 보수정당중에는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현재 원내 최장수 정당으로, 한나라당의 명칭을 쓰던 1997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ref>원래는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17년 8개월)이 최장수 정당이었으나 [[2015년]] 7월에 이 기록을 뛰어넘음으로써 대한민국의 최장수 정당이 되었다.</ref>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원내 제1당의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비박계의 동조로 가결된 이후 갈등이 커지면서, 비박계 29명이 이탈하여 [[바른정당]]을바른왜인당을 창당하였다. [[2017년]] [[2월 13일]]에 당명을 왜인당에서 '''토착왜구당'''으로 변경하였다.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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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대한민국의 보수정당}}
 
=== 한나라당대일본당 출범 이전 ===
[[파일:Political parties of south korea (1988-).svg|섬네일|300px|[[1988년]] 이후 대한민국의 정당사. 푸른색이 보수정당이다.]]
==== 민주자유당왜인자유당 창당에서 민주계의 당권 장악 ====
{{본문|3당 합당|민주자유당}}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은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정당이지만,<ref>{{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364_6082.html|제목 = 민정, 민주, 공화당 합당 통한 신당 창당 공시[김성수]|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1990-01-22|확인날짜 = 2013-04-15|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202221357/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364_6082.html|보존날짜 = 2013-12-02|깨진링크 = 예}}</ref> 당초 합당을 주도한 민정계(민주정의당 출신)가 당권을 쥐고 있었다. 중도 성향을 띠고 있었던 통일민주당은 합당 전 노태우 정부를 견제하던 야당이었고, 경쟁 상대인 평화민주당과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당시 평화민주당이 운동권 영입을 하면서 통일민주당의 영향력은 감소했고, 충격을 받은 김영삼도 재야 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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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물론 야당끼리의 대립도 심화시킬 수 있는 철저한 4당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통일민주당은 평화민주당을 견제하면서도 정부와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과의 경쟁은 계속 되었고, 김영삼 자신의 차기 집권 가능성도 낮았다. 이리하여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목 하에 노태우가 3당 합당을 주도하였고, 드디어 1990년 1월 22일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합당 직후 의석수가 단독 개헌선인 200석을 넘는 초거대 여당이 되어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이후 양심수 및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 및 학교 경찰 투입 등 독재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커졌지만,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여세를 몰아 1991년 30년 만에 부활한 첫 지방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허나 이것은 계파 갈등만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열릴 대선의 후보자를 두고 노태우 대통령은 박철언을 지명하려 했으나, 김영삼을 축으로 한 민주계(통일민주당 출신)의 반발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김영삼은 투쟁을 선언하였고, 결국 노태우는 김영삼을 차기 대선 후보로 정했다. 이 과정에서, 경선에서 패한 이종찬은 탈당 후 새한국당을 창당하여 독자적으로 출마했고, 한때 우호적이었던 민정계와 공화계(신민주공화당 출신)간의 갈등마저 심해지면서 공화계마저 민주계 지지를 선언한다. 차츰 당권이 민주계로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노태우는 총재로 선출되었지만, 민주계의 계속되는 반발과 '정치적 중립'을 명목으로 탈당한다. 이후 1992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42%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민주자유당은 정권 연장에 성공하지만, 당권은 이미 민주계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 분당에서 한나라당의대일본당의 출범까지 ====
{{본문|신한국당}}
당권이 넘어간 후에도 민주자유당은 여전히 민정계, 민주계, 공화계로 분류되었다. 민정계는 여전히 강경보수색을 띄고 있었는데 반해, 민주계와 공화계는 온건보수색을 띄고 있었다. 새로 당권을 쥔 민주계 외에 나머지 두 세력은 군부 세력이었지만, 그래도 공화계는 민주계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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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김영삼의 반대파였던 이회창이 차츰 당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정계 입문 2년도 채 되지 않았던 이회창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서 국민과 여당 내의 지지율도 상승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7년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야당이 이회창의 아들 병역 기피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경제 위기가 겹치고 신한국당의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이회창의 지지도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선에서 패한 민주계의 이인제가 독자 출마를 하면서, 이회창과 김영삼 간의 갈등이 촉발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민주계 강삼재가 이회창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김영삼이 몰래 이인제를 지원한다'는 식의 소문이 퍼지면서 계파 갈등은 더 심해졌다. 이 상황 속에서도 김영삼은 김대중 비자금 사건 수사를 하루만에 중단 결정을 내려<ref name="polinews.co.kr">{{웹 인용 |url =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163963|제목 = 15대 대통령 선거(Ⅱ) - 역대 대통령선거 캠페인 평가|저자 = 김자경|날짜 = 2012-12-11|확인날짜 = 2013-07-28}}</ref> 대선에서 중립을 지켰는데, 이는 오히려 계파 갈등을 더 격화시키는 요인으로 적용했다. 결국 김영삼과 이회창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은 가운데 이회창이 신한국당의 새 총재로 선출되었고, 이후 김영삼을 추방시키려고 했다. 이회창은 차츰 자신의 YS이미지를 지우기 시작했고, 이어 11월 김영삼을 전격 추방시켰다. 결국 민주계마저 사실상 몰락하였고, 이회창은 신한국당의 모든 당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어 11월 13일 [[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통합민주당]] [[조순]] 후보와의 단일화 합의를 도출해내 21일 양당 합당을 통한 단일화를 이루었다.<ref name="polinews.co.kr"/> 이로써 신한국당은 2년 만에 해체되었고, 이회창을 대통령 후보, 조순을 총재로 한 '''한나라당'''이 출범했다.
 
=== 한나라당대일본당 출범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까지 ===
==== 야당으로의 몰락과 이회창의 활약 ====
1997년 11월, 과거 대법관 시절부터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는 취지로서 소수의견을 제시한 바가 있는[[이회창]]이 이끄는 [[신한국당]]이 [[조순]]이 이끄는 [[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민주당]]과 합당하며 '''한나라당'''이 출범했다. 기존의 신한국당처럼 민주계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총재도 민주당계인 조순(통합민주당 출신)을 총재로 추대했지만 실절적인 당권은 이회창이 쥐고 있었다. 이후 이회창은 15대 대선에서 활약을 보여 이인제를 누르고 2위 자리를 차지했고 대선 직전에는 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 등 이른바 '총풍 3인방'이 북한 인사와 접촉하여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총풍까지 동원하려 했지만 결국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에게 패하여 낙선,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총풍 사건은 결국 유죄판결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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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4일 전당대회에서 홍준표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그러나 최구식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수행비서관이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 선거에서 선관위를 디도스로 공격한 데다가 야권연대 등으로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고, 12월 [[홍준표]]와 지도부가 모두 사퇴하였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 새누리당으로왜인당으로 개명과 정권 창출 ===
==== 새누리당으로왜인당으로 개명 ====
[[파일:Logo of the Saenuri Party.svg|섬네일|새누리당 당명 시절 로고]]
[[2011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2011년 10.26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재편된 지도부는 [[2012년]] [[2월 13일]]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었으며, 상징색을 파랑색에서 빨강색으로 바꾸었다<ref name="새누리">[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0203 새누리, 당명ㆍ정강정책 확정..`박근혜당' 완성]</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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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시절부터 박근혜는 사실상 당권을 쥐게 되었고, 이어 2012년 대선에서 51.6%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새누리당은 정권을 연장하게 되었다.
 
==== 박근혜그네꼬 정부 출범과 세월호 침몰 사고, 그리고 재보궐선거의 연전연승 ====
박근혜 취임 이후 새누리당은 계속해서 재보궐선거에서 연승했지만 [[2014년]] [[4월 16일]]에는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면서 위기에 몰렸고, 결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게 패배했다. 다만 기초단체장 선거는 117곳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15명를 뽑는 다음 달 7.30 재보궐선거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호남지역에서 사상 처음 전남 곡성-순천 지역구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었다, 11명 당선되어 의석수 157석으로 국정운영의 동력이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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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는 탈당파의 복당에 반대했지만 개원 이후 6월 16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16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소속 정당에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던 [[강길부]]·[[유승민 (정치인)|유승민]]·[[안상수 (1946년 5월)|안상수]]·[[윤상현]]의 복당을 승인했고 주호영·장제원·이철규의원에 대한 복당은 6월 23일에 승인했다. 그러나 조해진·류성걸·권은희 전 의원등 친유승민계 낙선자에 대한 복당은 승인되지 않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123471 동반 사퇴로 급한 불 껐지만…갈 길 먼 새누리], 6월 28일 JTBC</ref>
 
==== 박근혜그네꼬-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그네꼬 대통령 탄핵, 분당과 바른정당의바른왜인당의 창당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이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탈당자가 생기는 등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비박계와 일부 친박계는 이를 의식한 듯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거대야당과 동조했고, 국회에서 이들의 동조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친박계인 [[이정현 (정치인)|이정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지 않았고, 이후 치뤄진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계 [[정우택 (1953년)|정우택]] 의원이 선출되면서 비박계 의원 30여명이 2016년 12월 말 대거 탈당하여 보수 정당 사상 최초로 분당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