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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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에서는 소승불교가 중생구제를 하지 않고 혼자만의 깨달음을 추구한다고 비판하는데, 금강삼매를 살펴보면, 그 비판이 정확한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하다.
 
'''[[금강삼매]]는 금강정'''(金剛定),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고도 한다. 금강석(金剛石)에 비유할 만한 굳음과 예리함을 가지고 모든 번뇌, 즉 아무리 미세한 번뇌까지도 끊어 없애는 힘을 가진 [[선정]](禪定)을 말한다. 금강삼매(金剛三昧)라고도 한다. 소승에서는 [[아라한]]이 지향하는 최후의 경지라 하고, 대승에서는 이것을 등각심(等覺心) 또는 등각금강심(等覺金剛心)이라고 한다. 등각심 또는 등각금강심이란, 구도자인 보살이 3대 아승지겁의 100겁의 수행을 거쳐 그 수행과정의 최후인 [[등각]](等覺)의 지위에 올라 금강유정에 든 것을 뜻한다. 이 금강유정이란 그러한 보살이 성불(成佛)하기 직전에 드는 선정이며, 지혜가 견고하기는 마치 금강석과 같고 한 생각에 무시(無始)의 무명을 타파하여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행의 최후의 도심(道心)이다.<[[대승대집지장십륜경]]>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을 최고 경지로 보고, 아라한의 추구하는 최후 명상 경지가 금강삼매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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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승불교의 금강경, 열반경에서도 금강삼매를 가르치고 있다.
 
보살마하살이 이 금강삼매에[[금강삼매]]에 머무르면 잠깐 동안에 시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 수 세계에 사는 중생들의 번뇌를 끊어 버리지만, 마음에는 모든 중생의 번뇌를 끊는다는 생각이 없다.<[[열반경]]>
 
즉, 수행자가 금강삼매에 머무르면 일체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인데,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이 금강삼매를 얻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승불교가 중생구제를 도외시한다는 비난은, 정확한 비난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