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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문화자산과 문화산업 ====
진주의 민속예술 분야 문화자산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주삼천포농악’,'진주검무'등 2종목의 국가무형문화재와 ‘한량무’, '진주포구락무', '진주교방굿거리춤', '신관용류가야금산조', '진주오광대' 등 5종목의 경상남도 무형문화재가 있다. 한국형 써커스‘솟대쟁이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를 앞두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 기록자산인 ‘교방가요’는 153년 전 저술되어 지역의 민속예술 전통을 뒷받침 해왔다. 현재 진주의 문화자산에 기반 한 공연예술 산업에는 무형문화재보존회 8개와 전문예술단체 12개, 협회 11개, 생활예술교육단체 16개 등 총 47개 집단이 활동하고 있다.
공예분야의 문화자산으로는 ‘소목장,'장도장','두석장' 등 3종목의 경상남도 무형문화재와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진주비단(실크) 문화가 있다. 또한 노동부에서 지정한 1명의 대한민국 가구제작 명장이 활동한다. 전승된 전통 공예기술은 185개의 공예 제작업체를 통해 산업화되고 있다.
 
== 경남일보 ==
[[1909년|19의 9년]] [[10월 15일]] 창간한 한국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진주시 상평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경남일보는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문이며<ref>[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about] {{웨이백|url=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about |date=20081012110938 }} 경남일보의 회사소개</ref>, 제1대 주필로는 시일야 방성대곡으로 필화를 입은 위암 [[장지연]] 선생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실어 정간을 당하는 등 일제와 공산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수차례 강제 폐간을 당하였고,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작업으로 그 해 [[11월 25일]] 강제 폐간을 당했다가 [[1989년]] [[11월 25일]] 신경남일보로 개칭하여 복간하였다. 2000년 다시 제호를 경남일보로 변경하였다.<ref>[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history] {{웨이백|url=http://www.gnnews.co.kr/company.html?section=history |date=20080316220558 }} 경남일보의 연혁</ref>
 
== 자매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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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위키공용분류|Jinju}}
* ☃☃ [http://www.jinju.go.kr/ 진주시청 (공식)]ㅈ{{언어링크|ko|en|ja|zh}} [http://www.jinju.go.kr/ 진주시청 (공식)]
* [https://web.archive.org/web/20180806152957/http://jinjunongae.com/ 진주 논개]
* [http://www.gaecheonart.com/ 개천예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