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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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2012년 11월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다승계하였다. 2013년 3월 14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선출되었다. [[2018년]]에는 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여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에 대해 "독재 회귀"라는 부정적 평가와 "안정성 기여"라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05/0200000000AKR20180305134400074.HTML|제목=시진핑 '장기집권'에 엇갈린 시각…"독재회귀" vs "안정성 기여"|성=안승섭|이름=|날짜=2018-03-05|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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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인연이 있던 왕치산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태자당 출신이면서 상하이방의 후원을 받던 보시라이, 후진타오의 비서실장 출신인 링지화가 중형에, 상하이방의 핵심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 군 최고지도부였던 궈보슝과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공청단 출신의 차기 주자였던 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겸 정치국 위원 등이 잇따라 숙청됐다.<ref name=":0" /> 이로 인해 상하이방과 공청단 등 기존 계파가 급속히 퇴조하고 시 주석에 충성하는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측근들)이 공고해졌다.<ref name=":0" />
 
시진핑의 부인은 중국의 국민 가수로 통하는 [[펑리위안]](彭麗媛)이다. 당 원로이자 개혁개방의 설계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보수와 진보의 지지를 모두 받았던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이 되었다. 2010년 10월 18일 제 17기 5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이 지위를 손에 넣은 것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ref>{{웹 인용 |url=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0021&newsid=20101019133109955&p=tomatotv |제목=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10-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12172002/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0021&newsid=20101019133109955&p=tomatotv |보존날짜=2014-08-12 |깨진링크=예 }}</ref>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제18기 1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그리고 2013년 3월 14일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취임연설과 다름없는 전인대 폐막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ref><발간사>장쩌민(2002), 《문철월간후진타오(文哲月刊2011)》, 1935.10</ref>을 역설하며 '중국의 꿈(中國夢)'<ref>홍콩 가수 뤄원(羅文)이 불렀던 1984년 히트곡 명칭</ref>을 강조하였다.
 
[[2018년]] [[3월 11일]]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전인대는 2964표 가운데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개헌 전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됐으나, 개헌 후에는 원칙적으로 '종신집권'도 가능할 수 있게 된다.<ref name=":1" /><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80311010005341|제목=시진핑 ‘1인 체제’ 시나리오 중국 개헌안 99% 찬성으로 통과|성=|이름=|날짜=|출판사=|언어=ko}}</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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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과의 관계 ==
[[파일:Korea China Press Conference 20130627 02.jpg|섬네일|[[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대체글=]]
* 대한민국의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리커창]] 총리와 함께 보복 조치를 취했다.
* [[2015년]] [[9월 2일]] [[베이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 [[2014년]] [[7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초청으로 부부 동반으로 방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