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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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군주인 [[쉴레이만 1세]](재위 1520 년 - 1566년) 때에 이르면 오스만 제국의 국력은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해져 능히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영역은 [[중앙유럽]]과 [[북아프리카]]에까지 확장되었다.
 
쉴레이만 1세는 즉위하면서 우선 [[베오그라드]] 정복으로 헝가리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오스만령 헝가리]] [[로도스 섬]]에서 무슬림에 대한 해적 행위를 벌이고 있던 [[성 요한말타 기사단]]을 쫓아내면서 동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1526년]]에는 [[모하치 전투]]를 통해 헝가리군을 격파, 헝가리의 땅 거의 대부분을 점령한다. 한편, 동쪽으로는 [[사파비 왕조]]를 공격하여 [[바그다드]]까지 손에 넣었으며, 남쪽으로는 [[예멘 왕국]]에 출병하여 [[아덴]]을 정복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과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동맹을 맺은 쉴레이만은 [[1529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을 1개월 이상에 걸쳐 포위하였다. 비록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오스만군이 [[서유럽]] 내 깊숙이까지 들어와 위협한 이 사건은 당시 서구 국가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는 [[압스부르고 스페인]]과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위시한 기독교 세계의 연합 함대를 대파시켜, 지중해 해상권의 거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는 데 성공했다.
 
쉴레이만의 치세는 이처럼 훌륭한 군사적 성공 외에도 건국 이래 오스만 제국이 형성해 온 국가제도가 완성단계에 이르러, 제도상의 파탄이 없었던 훌륭한 이상의 시대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쉴레이만의 치세는 국가제도의 전환기가 시작된 때이기도 하였다. 쉴레이만 이후, 전쟁터에서 군주가 앞장서서 출정하는 일도 없어졌으며, 정치조차도 거의 재상이 처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