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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타이지는 총 다섯 차례에 걸친 중원 침공 중에 북경성을 포위하기도 하고 북경 인근 지역과 산서·산동의 여러 주현을 약탈하며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였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성도 거점으로 유지하지 못했다. 산해관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정복 전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홍 타이지는 먼저 산해관 외곽의 4개의 성, 즉 금주, 송산, 행산, 탑산을 공략하여 산해관에 접근하고자 하였다.<ref>{{서적 인용|저자=魏源|저자링크=|제목=聖武記|권=1|연도=1984|출판사=中華書局|쪽=29}}</ref><ref>{{저널 인용|저자=박민수|날짜=2018년 6월|제목=홍타이지 시기(1627-1643) 만주의 對 중국 전략|url=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85629&language=ko_KR|저널=군사|출판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권=|호=107|doi= |확인날짜=2019년 6월 6일|쪽=222~223}}</ref>
 
1640년 3월 18일, 홍 타이지가 지르가랑과 [[아이신기오로 도도|도도]]를 각각 좌·우익 군의 대장으로 임명하여 금주 근방에 주둔시키고 둔전을 행하여 공격 거점을 구축함으로써, 송산(松山)·금주(錦州) 전투가 발발했고,<ref>{{저널 인용|저자=박민수|날짜=2018년 6월|제목=홍타이지 시기(1627-1643) 만주의 對 중국 전략|url=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85629&language=ko_KR|저널=군사|출판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권=|호=107|doi= |확인날짜=2019년 6월 6일|쪽=223}}</ref> 1642년 4월, 마침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산해관 외곽 2백 리 지역의 명의 군사 거점을 붕괴시켜 관외 지역을 석권하고 산해관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했다.<ref name="Park">{{저널 인용|저자=박민수|날짜=2018년 6월|제목=홍타이지 시기(1627-1643) 만주의 對 중국 전략|url=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85629&language=ko_KR|저널=군사|출판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권=|호=107|doi= |확인날짜=2019년 6월 6일|쪽=226}}</ref>
1642년 4월, 마침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산해관 외곽 2백 리 지역의 명의 군사 거점을 붕괴시켜 관외 지역을 석권하고 산해관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했다.<ref name="Park">{{저널 인용|저자=박민수|날짜=2018년 6월|제목=홍타이지 시기(1627-1643) 만주의 對 중국 전략|url=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85629&language=ko_KR|저널=군사|출판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권=|호=107|doi= |확인날짜=2019년 6월 6일|쪽=226}}</ref>
 
송금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요서 지역을 거점으로 확보하자, 한족 관료들은 좀 더 과감하게 [[북경]]을 직접 공격할 것을 상주하였다.<ref name="Park"/> 그러나 홍 타이지는 무리해서 산해관을 장악하거나 북경을 점령할 의도가 없었고, 가능하다면 명나라와 화의를 맺고 청 내부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ref>{{저널 인용|저자=박민수|날짜=2018년 6월|제목=홍타이지 시기(1627-1643) 만주의 對 중국 전략|url=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85629&language=ko_KR|저널=군사|출판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권=|호=107|doi= |확인날짜=2019년 6월 6일|쪽=22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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