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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m 모바일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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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수부(黑水部) ===
{{본문|흑수말갈}}
[[흑수말갈]]의 거주지는 [[흑룡강]] 주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흑수말갈 유적은 대단히 많이 조사되었다.흑수말갈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러시아 원동(遠東) 지구인 흑룡강 중하류 지역에 있는 나이펠트(乃伊費尒德) 고분군, 수빈(綏繽) 동인유적(同仁遺蹟), 몽북(夢北) 단결묘장(団結墓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나이펠트 고분군은 1960년부터 1961년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토광수혈봉토묘가 모두 40기였다. 이 유적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ref name="SUK"/>
 
흑수말갈로 소급되는 나이펠트 그룹은 7세기 말에는 제야–부레야 저지대에 출연했던 흔적이 발견된다.<ref>홍형우,{{저널 인용|저자=홍형우|제목=서(西) 아무르 지역 말갈(靺鞨) 토기의 특성과 그 전개 : -최근 발굴 유적을 중심으로》,|url=https://www.kci.go.kr/kciportal/mSearch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insiId=INS000000804&sereArticleSearchBean.sereId=000730&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04491|날짜확인=2019년 6월 6일|총서=한국상고사학보|권=74|날짜=2011년 한국상고사학회11월}}</ref>
중국 측에서 조사한 대표적인 흑수말갈 관련 유적인 동인유적은 흑룡강성 수빈현에 있는데 1972년에 발굴했다. 이 문화는 두 개의 분기로 나뉘어진다. 동인 1기는 남북조에서 당초, 동인 2기는 오대에서 요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한다. 유물로는 도기, 칼, 낫, 자귀, 화살촉 등의 철기가 있다. 그러나 석기가 더 많고 철기는 보편적이지 않다. 거주지는 반지하식이다. 문은 동으로 향해 있고, 화덕은 중간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었다.
 
 
몽북 단결묘장은 1982년 8월에 가목사시(佳木斯市) 문물관리참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무덤 가운데 3기를 시굴해서 도기와 철기 등 표본 20여 개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3년 가을에 흑룡강성 문물고고공작대에서 이 묘지를 정식 발굴했다. 10기의 무덤을 발굴, 조사했는데 모두 장방형 수혈토갱묘였다.
 
남아 있는 인골을 관찰한 결과 1인장도 있고, 2인장도 있으며, 1차장인 무덤과 2차장이 이루어진 무덤이 있었다. 또 반수 정도의 무덤에는 목탄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화장으로 인한 결과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확인된 무덤 가운데 반 정도에서는 묘실의 한 면 혹은 다리 부분에 있는 생토대 위에 대형 토기가 놓여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도기, 철기 등 백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토기는 모두 손으로 빚어 만든 것으로 태토는 모래가 섞인 진흙이었으며, 황갈색 혹은 회갈색을 띠고 있었다.
 
이 유적의 문화 특징을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토기는 반구세경심복대관(盤口細頸深腹大罐)이다. 이는 1973년 흑룡강성 수빈 동인유지 하층에서 발굴, 출토된 것과 그 풍격이 거의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동인유적 하층과 몽북 단결묘장은 같은 고고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전자는 취락 유적이고 후자는 고분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유적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으로, 즉 남북조와 수·당 사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성격의 유적은 러시아 경내 흑룡강 중하류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흑수말갈로 소급되는 나이펠트 그룹은 7세기 말에는 제야–부레야 저지대에 출연했던 흔적이 발견된다.<ref>홍형우, 《서(西) 아무르 지역 말갈(靺鞨) 토기의 특성과 그 전개 : -최근 발굴 유적을 중심으로》, 한국상고사학회</ref>
 
=== 백산부(白山部) ===
끝으로 [[백산말갈]]에 대해서는 [[백두산]] 주변과 [[연변]] 지역 일대로 보는 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최근 [[함경도]] 쪽으로 내려 보거나 연변 지역과 한반도 동북부 지역을 모두 포괄한 것으로 보는 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병이 수천, 또는 7천이라고 나오는 속말말갈, 백돌말갈과 달리 백산말갈은 3천이라고 나온다. 따라서 거주지가 다른 말갈 집단보다 넓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돈화와 백두산 일대 지역이 백산말갈의 중심지였고, 그 외 연길·용정·훈춘과 경성 주변 일대를 포함한 지역으로 한정될 것으로 본다.<ref name="KIM">{{서적 인용|author=김현숙|authorlink=|title=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series=|publisher=모시는사람들|year=2005|isbn=9788990699305|page=438~47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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