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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표}}
'''백제'''(百濟, {{llang|en|Baekje}}, [[기원전 18년]]
백제는 [[성왕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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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집단이 한강유역에 정착하였을 때 이 지역은 직산-천안을 중심으로한 목지국 중심의 마한에 속하여 있어 마한으로부터 100리의 땅을 할애받아 십제를 세우고 미추홀 지역의 비류집단과 연맹을 형성하여 초고왕때 지역연맹의 맹주가 되어 백제라고 이름을 고쳤다.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나라]]의 군현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차츰 성장해 나갔다. [[3세기]] 중엽 [[백제 고이왕|고이왕]] 때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소금의 산지였던 인천까지 영향권에 넣었다.<ref>한 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역사 52쪽, 경기도사편찬위원회, 2008년 9월</ref>또한 이때부터 중국 산동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고이왕 시기 고대 한반도에서는 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246년에 진한(辰韓)의 8국을 분할하는 문제로 마한과 낙랑·대방군(樂浪·帶方郡)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전쟁에서 마한은 대방태수(帶方太守)를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렸지만 결국 패배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목지국(目支國)의 위상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백제는 기존의 마한 54개 부족연맹체의 우두머리였던 목지국을 제압하고, 새로이 마한의 맹주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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