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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은 캄보디아를 떠났지만, 크메르 루주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노로돔 시아누크 행정부와 론 놀의 친미 군사 행정부에 대한 정적으로서 폴 포트는 크메르 루주 게릴라 부대를 이끌었다. 미국의 지원이 없어지자 국토 관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론 놀의 친미 정권은 즉시 붕괴했고 [[1975년]] [[4월 17일]]에 크메르 루주는 [[캄보디아 내전]]에서 승리하고 프놈펜을 점령했다. 그때 도시민은 크메르 루주 게릴라 부대가 승복을 군복으로 입고 있었으므로 까마귀가 왔다면서 공포에 떨었다. 크메르 루주는 전권을 장악하고 국명을 《민주캄푸치아》라고 개명하였고 론 놀은 미국에 망명했지만, 늦게 도망친 론 놀 일파인 론 보레트를 위시한 각료는 수도 함락 직후에 적군소탕위원회에 신병이 인도되어 전원 처형되었다. 크메르 루주는 그 밖에도 정치가, 고관, 경찰관, 군인을 위시해 700명 남짓을 처형했다. 폴 포트는 시아누크와 매국노로 이름을 올린 소수의 인물만을 처형한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후 정권을 장악하기 전의 공직자나, 군에 종사한 사람은 가족까지 처형하는 때도 있었고 그 주변 인사들도 처형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1970년대 초 캄보디아 전역에 광범위하게 대규모로 미군이 무차별로 폭격하여 남녀노소 막론하고 수십만 명이 끔찍하게 죽었고 무능력했던 론 놀 친미 행정부의 부패 행위에 염증을 느꼈던 국민 거의 대부분이 론 놀 친미 행정부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이는 폴 포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 집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