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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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heeSyngman 1945's.jpg|섬네일|130px|왼쪽|[[이승만]] ([[1945년]] [[10월]])]]
 
[[1945년]] [[10월]] [[이승만]]이 귀국하자 그는 이승만에게 [[조선공산당]]의 영수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ref>여운형과 여운홍 역시 이승만 귀국 다음날, 조선호텔을 찾아, 이승만에게 인공 내각 주석취임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ref> 그 후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독립촉성중앙회에 가담했으나 [[친일파]] 처리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다가 [[조선공산당]]을 이끌고 [[독립촉성중앙회|독촉]]을 탈퇴했다. 그러나 당시[[조선공산당]]의 구성은 친일파 주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친일파를 중용하였다. 하지만 조선공산의 구성에 있어서 친일파 주도라는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평소의 박헌영의 성향이나 행적을 봤을때 이는 극우의 모함으로 보여진다. 45년 [[10월 29일]] 박헌영은 이승만을 만났다. 이승만은 공식 석상에서 [[친일파]] 즉각 숙청에 반대하고<ref group="주해">박헌영의 친일파 즉시 숙청론에 대해 이승만은 건국 후 일부 숙청을 주장하였다.</ref>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직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박헌영은 [[친일파]] 숙청은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반박하는등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1946년]] 이후 좌우대립이 가속화되면서 [[이승만]]을 방문할 때 그는 [[돈암장]]과 [[이화장]]에서 음식을 주면 의심하여 다른 이에게 먼저 먹어보게 하거나, 음식을 기피하였다. 한번은 [[김원봉]]과 함께 돈암장을 방문했을 때, [[윤치영]]이 직접 요리를 하여 간을 본 뒤 식사를 대접했으나 박헌영은 이를 먹지 않았다. 이후 [[1947년]] 이전까지 종종 [[마포장]]과 [[돈암장]]을 방문했지만 형식적인 대화만 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