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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
| 총인구 = 3000만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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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1 = 23,929,309 (2013)<ref name=CIA-Uzbek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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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6 = 490,000<ref>[http://www.stat.kz/news/Pages/pr_04_02_10.aspx Ethnic groups in Kazakhstan, official estimation 2010-01-01 based on National Census 2009]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00208073821/http://www.stat.kz/news/Pages/pr_04_02_10.aspx |date=2010-02-08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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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10 = 70,133 (2005)<ref>Rhoda Margesson (January 26, 2007). [https://fas.org/sgp/crs/row/RL33851.pdf "Afghan Refugees: Current Status and Future Prospects" p.7]. Report RL33851,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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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13 = 22,400<ref>[http://www.ukrcensus.gov.ua/eng/results/nationality_population/nationality_1/s5/?botton=cens_db&box=5.1W&k_t=00&p=100&rz=1_1&rz_b=2_1%20&n_page=6 State Statistics Committee of Ukraine: The distribution of the population by nationality and mother tongue] {{web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01192304/http://www.ukrcensus.gov.ua/eng/results/nationality_population/nationality_1/s5/?botton=cens_db&box=5.1W&k_t=00&p=100&rz=1_1&rz_b=2_1%20&n_page=6 |date=2008-12-01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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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14 = 14,800<ref name="China">{{웹 인용|url=http://www.paulnoll.com/China/Minorities/min-Uzbek.html|title=Uzbek Minority – Chinese Nationalities (Ozbek)|publisher=|accessdate=26 April 201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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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16 = 560<ref>{{
| 언어 = [[우즈베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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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계통 = [[튀르크족]]
| 기원발상 =
}}
'''우즈베크인'''({{lang|uz|O‘zbek/O‘zbeklar}})은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민족이다. 대부분이 [[우즈베크어]]를 사용하고, 일부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이슬람교]]
==
'우즈베크'라는 명칭은 [[우즈베크 한]]의 생전에 [[킵차크 칸국|주치 울루스]]를 [[몽골어]]로 지칭할 때 사용한 우즈베크 울루스({{llang|mn|{{만몽 유니코드|ᠤᠽᠪᠡᠬ<br />ᠦᠯᠦᠰ}}|Uzbek Ulus}})를 [[페르시아어]]로 옮긴 발라듸 우즈베크(balad-i Uzbek) 등의 표현으로 처음 나타나고, 우즈벡 한이 죽은 뒤에도 일정기간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다.<ref name="KHD">{{저널 인용 |저자= [[김호동]]|날짜= 1993|제목= 15-16세기 中央아시아 新遊收集團들의 動向|url=http://hdl.handle.net/10371/87952 |저널=러시아연구 |출판사= [[서울대학교]] 러시아 연구소 |권= |호= 03 |doi= |확인날짜=2019년 5월 31일|page=118}}</ref> 톡타미시가 사라진 뒤 주치 울루스는 쇠퇴하다가 15세기 중반경 [[크림 칸국|크리미아]], [[카잔 칸국|카잔]], [[아스트라한 칸국|아스트라한]] 등 세 개의 지역정권으로 분열되면서<ref>{{서적 인용|author1=김호동|authorlink=|title=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series=|publisher=사계절|isbn=9788958289326|year=2016|page=138~139}}</ref> 그 서부의 세력들은 이슬람권과의 접촉이 소원해짐에 따라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에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불 하이르 칸|아불 하이르 한]]의 지배를 받게 된 [[카자흐스탄]] 초원을 중심으로 한 동부의 유목민들만이 [[티무르 제국]]의 사료에 ‘우즈베크’로 불리워지게 되었다.<ref name="KHD"/>
[[우랄 강]] 이동 지역의 유목민들을 규합한 아불 하이르 한은 1430~31년 사이 [[호라즘|화레즘 지역]]을 정복하였고, 1447년경에는 시르 다리야 강 유역의 도시들을 정복한 후 [[시그낙]]을 수도로 삼았다. 그는 또한 티무르 제국의 [[아부 사이드 미르자]]가 군주가 될 수 있도록 군사적으로 지원하여 티무르 제국 내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ref>{{학위논문 인용|author= 이주엽|date= 2003 |title= 16세기 중앙아시아 신흥국가들의 몽골제국 계승성 연구 - 우즈벡·카자흐칸국과 무굴제국의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url=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365462 |publisher= [[단국대학교]] 대학원|page= 22~23 }}</ref>
== 산업 ==▼
우즈베크인은 상당수가 농업 · 수공업 · 상업 등 여러 산업에 종사한다. ▼
;해석
{{인용문|주치의 후손 아불 하이르는 주치 울루스, 즉 킵차크 초원의 지배자이며
당대 최강의 군주였다.}}<ref>Muhammad Haidar, Ross(tr), A History of the Moghuls of Central Asia being The Tarikh-I -Rashidi of Mirza Muhammad Haidar, Dughlat, Curzon Press, 1972, pp.92.</ref>
이처럼 당대 최강의 군주로 평가받던 아불 하이르가 이끌던 우즈베크 유목민들은 내부 분열과 외부의 침공으로 인해 쇠퇴했다. 우즈베크 유목민들은 1456~7년 사이 우즈 티무르가 이끄는 [[오이라트|오이라트인]]의 침공을 받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아불 하이르의 즉위 전 우즈베크 유목민들의 수장이었던 바락 한의 두 아들 기레이와 자니벡은 아불 하이르에게 반기를 들고 자신의 집단을 이끌고 [[모굴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분리 움직임을 저지하려던 아불 하이르는 자니벡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후 사망하였고, 곧 이어 그의 아들 또한 모굴 한국의 [[유누스 칸|유누스 한]]에게 패배하여 사망하였다.<ref>{{학위논문 인용|author= 이주엽|date= 2003 |title= 16세기 중앙아시아 신흥국가들의 몽골제국 계승성 연구 - 우즈벡·카자흐칸국과 무굴제국의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url=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365462 |publisher= [[단국대학교]] 대학원|page= 23 }}</ref>
== 언어 ==▼
[[파일:Shaybani.jpg|섬네일|300px|무함마드 샤이바니.]]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1500년경 [[주치]]의 후손인 [[무함마드 샤이바니]]라는 인물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중앙아시아는 물론 그 주변의 정치세력의 재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중앙아시아를 거점으로 한 티무르 제국의 세력이 완전히 붕괴되고 축출된 티무르의 후예인 [[바부르]]는 북인도에 위치한 [[델리]]를 근거지로 삼아 [[무굴 제국]]을 건국했으며, 모굴 한국도 샤이바니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그 군주들이 생포되는 수모를 당하게 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ref>{{저널 인용 |저자= 김호동|날짜= 1993|제목= 15-16세기 中央아시아 新遊收集團들의 動向|url=http://hdl.handle.net/10371/87952 |저널=러시아연구 |출판사= [[서울대학교]] 러시아 연구소 |권= |호= 03 |doi= |확인날짜=2019년 5월 31일|page=98~99}}</ref>
샤이바니의 중앙아시아 정복이 지니는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중앙아시아에 우즈베크인들의 국가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우즈베크 국가의 출현으로 인해 [[시르다리야 강|시르 다리야]] 북방에서 유목하던 우즈베크인들이 대규모로 남하하여<ref group="주">Allworth(1989), Edward(ed), Central Asia : 120 Years of Russian Rule, Duke University Press, pp.46. 아불 하이르 한을 따라 남하하지 않은 우즈베크 유목민들은 [[시비르 한국]]을 건설하였다.</ref> 중앙아시아 현지의 주민들과 잡거하게 되었고 결국 중앙아시아는 ‘우즈베크 화(化)’했다.<ref>{{저널 인용 |저자= 김호동|날짜= 1993|제목= 15-16세기 中央아시아 新遊收集團들의 動向|url=http://hdl.handle.net/10371/87952 |저널=러시아연구 |출판사= [[서울대학교]] 러시아 연구소 |권= |호= 03 |doi= |확인날짜=2019년 5월 31일|page=99}}</ref>
1510년, 샤이바니가 [[사파비 왕조]]와의 메르브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우즈베크인들의 팽창은 중단되었다.<ref name="UNESCO">{{서적 인용|last = Davidovich|first = E. A.|contribution = The Karakhanids; Chapter 6 The Karakhanids |year = 1998|title = History of Civilisations of Central Asia|editor = C.E. Bosworth |volume = 4 part I |pages = 119–144|publisher = UNESCO Publishing|isbn = 92-3-103467-7}}</ref> 사바피 왕조의 [[샤]] [[이스마일 1세]]가 보낸 군대와 그의 후원을 받은 티무르의 후예 바부르를 축출하고 새로운 한국을 건설했다. 1540년 한국의 터전을 닦은 우베이둘라가 죽은 뒤 내분이 발생했으나 17년 뒤 압둘라가 내분을 종식시키면서 안정을 되찾았고 이후 [[부하라 한국]]으로 불리게 된다.<ref name="Hodong">{{서적 인용|author1=김호동|authorlink=|title=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series=|publisher=사계절|isbn=9788958289326|year=2016|page=178}}</ref>
한편 이스마일 1세가 화레즘 지방을 일시적으로 정복하자, 이 지역의 도시, [[바지르]]의 주민들이 사파비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일바르스 1세]]를 불러들였다.<ref name="Yuri">Yuri Bregel, “ILBĀRS KHAN,” ''Encyclopædia Iranica'', online edition, 2012, available at http://www.iranicaonline.org/articles/ilbars-khan</ref> 이에 일바르스 1세와 그의 형제 발바르스 술탄은 화레즘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우르겐치]]를 정복한 이후인 1511년, 일바르스는 한으로 옹립되어<ref name="Bregel">Yuri Bregel, “ʿARABŠĀHĪ,” ''Encyclopædia Iranica'', online edition, 2011, available at http://www.iranicaonline.org/articles/arabsahi-a-dynasty-of-chingisid-origin-that-ruled-in-karazm-from-the-beginning-of-the-10th-16th-century (2013년 5월 28일 확인).</ref> [[히바 한국]]으로 알려진 또 다른 우즈베크 왕조가 성립했다.<ref>Aboul- Ghazi Bahadour Khan, Desmaisons(tr), Histoire des Mongols et des
Tatares, Philo Press, 1970, pp.515~539.</ref>
1740년 [[나디르 샤]]가 히바 한국을 침공하자, [[페르가나]] 지역에 대한 부하라 한국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이 지역에 살던 밍 부족의 수령 [[압둘 카림 비이]]는 이 틈을 이용하여, 1733년 코칸드에 성채를 짓고 정치적으로 독립해 코칸드 한국이 성립되었다. [[준가르]]의 멸망으로 [[청나라]]의 신강과 인접하게 된 코칸드 한국은 [[카자흐 칸국|카자흐]], [[러시아 제국|러시아]], 부하라와 중개무역을 통해 성장하게 되었고, [[이르다나 비이]]는 1763년 청에 보낸 서한에서 칸을 자칭했다.<ref>{{서적 인용|author1=김호동|authorlink=|title=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series=|publisher=사계절|isbn=9788958289326|year=2016|page=178~179}}</ref>
1920년에 [[소련]]에 합병되어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으며, 1991년 8월 31일에 독립 선언과 함께 독립하였고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ref name="UNESCO"/>
▲== 산업 ==
▲우즈베크인은 상당수가 농업 · 수공업 · 상업 등 여러 산업에 종사한다.
== 중국의 우즈베크족 ==
중국의 우즈베크족({{zh-sp|s=乌孜别克族|p=Wūzībiékè Zú}})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즈베크족이다. 중국의 우즈베크족은
== 거주 국가 ==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과 [[서유럽]]국가들, [[미국]],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도 거주한다. 사업이나 노동, 유학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에도 상당수의 우즈베크인이 거주한다. [[서울특별시]] [[동대문]] 일대에는 우즈베크인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 등이 영업하고 있다.
==
<references group="주" />
=== 각주 ===
{{각주}}
{{우즈베키스탄 주제}}
[[분류:우즈베키스탄의 민족]]
[[분류:러시아의 민족]]
[[분류:이란의 민족]]
[[분류:튀르크족]]
[[분류:우즈베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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