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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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에는 재적 대의원 2,359명 중 2,354명이 참여해 99.8%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불참자는 해외 체류 중이던 서울의 서정귀·남궁연 대의원, 부산의 이재헌 대의원, 경북의 정타용 대의원 등 4명과 와병 중이던 전남의 정병용 대의원 등 5명이었다.<ref>{{웹 인용|url=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30700329201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3-07&officeId=00032&pageNo=1&printNo=8442&publishType=00020|제목=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확인날짜=2019-04-18}}</ref> 재적 대의원의 과반의 지지가 필요한 대통령 선거와 달리, 간선 의원 선거는 재적 대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 대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했음으로, 이 선거에는 출석자 2,354명의 과반인 과반인 1,178표가 필요했다.
 
국민회의는 95.6%의 압도적인 찬성율로 박정희 대통령이 추천한 국회의원 후보들을 승인하였으며, 이때 당선된 간선 의원들은 3월 10일 [[유신정우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결성하고 12일 제9대 국회의 개원과 동시에 취임하였으며, 앞서 2월 27일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직선제 의원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박정희 정부의 여당으로 활동했다. 간선 의원 당선자 73명 중 [[김종필]] 전 총리를 포함한 29명은 민주공화당 당적 보유자였으나, 당선 후 유정회 가입을 위해 탈당했다.<ref>{{웹 인용|url=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308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3-08&officeId=00020&pageNo=1&printNo=15824&publishType=00020|제목=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확인날짜=2019-05-1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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