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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고의 은전으로는 쇼군의 이름 한 글자를 하사받는 일자배령(一字拝領) 등이 있었다. 또한 슈고의 격식으로써 백산대(白傘袋) ・ 모전안복(毛氈鞍覆)를 사용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슈고다이에게는 당산대(唐傘袋) ・ 모전안복(毛氈鞍覆)、도여(塗輿) 사용이 허락되었다. 또한 슈고 ・ 슈고다이와 함께 도여(塗輿)의 사용이 허락되어, 유력한 무사로써 권위성을 인정받고 있다. 간레이(管領) ・ 단다이(探題)에 이른 자나 유력 슈고에게만 허용되었던 특전으로는 야카타(屋形) 칭호와 붉은 사이하이(采配)가 허락되었으며, 야카타 칭호를 가진 자의 가신은 에보시(烏帽子)와 히타타레(直垂)를 착용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특히 가마쿠라 구보(鎌倉公方) 아시카가 가문에는 [[간토]](関東)의 유력 무사 가운데 8개 가문으로 야카타 칭호를 받은 자를 간토하치야카타(八屋形) 등으로 불렸다.
 
=== 센고쿠 다이묘의 출현과 센고쿠 시대의 슈고 ===
오닌(応仁) ・ 분메이(文明)의 난을 전후해서 각지의 슈고들 사이에, 혹은 고쿠진 등의 지역 세력과의 항쟁이나 슈고 가문에 있어서 내홍이 발생하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듯 재지영주인 고쿠진(고쿠슈国衆)의 독립 지향(고쿠진 잇큐国人一揆 등)이 발생하고, 자립적인 고쿠진은 슈고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영역 지배를 행하였다. 이러한 동향은 슈고 권위의 저하를 초래하였고, 한편으로 슈고 가문에 의한 고쿠진 지배 강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메이오(明応) 2년([[1493년]])의 메이오 정변(明応の政変) 전후를 계기로 해서 저하된 권위 부활에 실패한 슈고들은 슈고다이나 고쿠진 등에게 그 지위를 빼앗기기도 하고, 거꾸로 고쿠진 지배의 강화에 성공한 슈고는 령국 지배를 한층 강화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가마쿠라 ・ 무로마치 시대 이래의 슈고 가운데 령국 통일이나 지배 강화에 성공한 슈고 가문이나, 슈고 가문을 대신해 대두해서 슈고 가문처럼 령국 지배를 행했던 슈고다이 ・ 고쿠진은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로 변질 ・ 성장하였고, 센고쿠 다이묘의 출현 ・ 소멸에서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의 시대구분이 행해지고 있다. 센고쿠 다이묘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군(郡) 규모에서 1개 구니 이상의 영역을 지배하고 조정이나 무로마치 쇼군 ・ 가마쿠라 구보 등 전통적인 권력 이외에 주종관계를 갖지는 않지만 꼭 중앙정권에 의해서 보장된 권력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외교와 군사 업무를 행하는 등의 요소가 지적되고 있다.
 
센고쿠 다이묘 가운데 기나이나 사이고쿠는 무로마치 막부의 분국(御分国)으로 슈고 가문에 출자를 두는 가문이 많았고, 반면 도고쿠에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씨(今川氏)나 가이의 다케다 씨(武田氏) 등 슈고 가문 출신뿐만 아니라 슈고 가문이 아니면서도 령국을 넓혀 성장한 사가미의 고호조 씨(後北条氏)나 간토 ・ 도호쿠 지방에서는 군 규모의 지배를 행했던 지역 세력이 분립하는 등 지역적인 특징이 있었다.
 
「센고쿠 다이묘」에 관한 연구는 패전 이후 일본에서 실증주의 사학이 심화되어 거기에 수반해 센고쿠 시대에 있어서의 슈고의 위치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이루어졌고 센고쿠 다이묘 권력의 배경에는 센고쿠 다이묘에 의한 전국법(戦国法)의 제정과 함께 슈고 권력의 존재가 지적되었으며, 勝俣鎮夫 등에 의해 센고쿠 다이묘의 령국 지배를 하나의 「지역국가」로 보려는 시도를 행하였다.
 
한편으로 센고쿠 다이묘 연구에 대해 야타 도시후미(矢田俊文)、이마오카 노리카즈(今岡典和)、가와오카 쓰토무(川岡勉) 등은 센고쿠 다이묘 령국의 「지역국가」설을 부정하고 센고쿠 시대에 있어서도 무로마치 쇼군 체제나 슈고 권위는 존재했고 「센고쿠 시대」라는 개념을 15세기 반부터 개시된 무로마치 막부의 해체 과정으로 보고 16세기 초두에는 슈고 권력의 변질로 「센고쿠 다이묘」가 출현하지만 어디까지나 센고쿠 다이묘도 무로마치 쇼군 체제의 범위 내에 있다고 평가하며 센고쿠 시대의 슈고를 「센고쿠 시기의 슈고」로써 위치시키고 있다.
 
센고쿠 다이묘 연구는 주로 도고쿠를, 센고쿠 시대 슈고론은 기나이 ・ 사이고쿠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전개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센고쿠 다이묘 ・ 센고쿠 시대 슈고의 인식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센고쿠 시대에 있어서의 슈고의 위치에도 논의가 있지만, 대체로 센고쿠 시기에는 무로마치 쇼군 체제가 일정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센고쿠 다이묘는 슈고 권력을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 독자적인 다이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데와 국(出羽国)의 센고쿠 다이묘인 안도 씨(安東氏)에는 당초, 에조 간레이(蝦夷管領)로써 에조치(蝦夷地, 북주北州)에도 세력을 가지고 오슈 도사미나토 히노모토 쇼군(奥州十三湊日之本将軍) 또는 도카이 장군(東海将軍)으로 칭하며 홋카이도(北海道) 남부(와타리시마渡島)에 토착한 안도 씨의 서류 가문이나 가키자키 씨(蠣崎氏, 훗날의 마쓰마에 씨松前氏)를 쇼고쿠 슈고직(上国守護職), 시타고쿠 슈고직(下国守護職), 마쓰마에 슈고직(松前守護職) 등으로 봉하는 등 막부 이외에도 슈고직이 독자적으로 설치 혹은 임명되는 사례도 예외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