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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고쿠 다이묘의 출현과 센고쿠 시대의 슈고 ===
[[오닌]](応仁) ・ [[분메이]](文明)의 난을 전후해서 각지의 슈고들 사이에, 혹은 고쿠진 등의 지역 세력과의 항쟁이나 슈고 가문에 있어서 내홍이 발생하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듯 재지영주인 고쿠진(고쿠슈国衆)의 독립 지향(고쿠진 잇큐国人一揆 등)이 발생하고, 자립적인 고쿠진은 슈고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영역 지배를 행하였다. 이러한 동향은 슈고 권위의 저하를 초래하였고, 한편으로 슈고 가문에 의한 고쿠진 지배 강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메이오]](明応) 2년([[1493년]])의 메이오 정변(明応の政変) 전후를 계기로 해서 저하된 권위 부활에 실패한 슈고들은 슈고다이나 고쿠진 등에게 그 지위를 빼앗기기도 하고, 거꾸로 고쿠진 지배의 강화에 성공한 슈고는 령국 지배를 한층 강화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가마쿠라 ・ 무로마치 시대 이래의 슈고 가운데 령국 통일이나 지배 강화에 성공한 슈고 가문이나, 슈고 가문을 대신해 대두해서 슈고 가문처럼 령국 지배를 행했던 슈고다이 ・ 고쿠진은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로 변질 ・ 성장하였고, 센고쿠 다이묘의 출현 ・ 소멸에서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의 시대구분이 행해지고 있다. 센고쿠 다이묘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군(郡) 규모에서 1개 구니 이상의 영역을 지배하고 조정이나 무로마치 쇼군 ・ 가마쿠라 구보 등 전통적인 권력 이외에 주종관계를 갖지는 않지만 꼭 중앙정권에 의해서 보장된 권력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외교와 군사 업무를 행하는 등의 요소가 지적되고 있다.
 
센고쿠 다이묘 가운데 기나이나 사이고쿠는 무로마치 막부의 분국(御分国)으로 슈고 가문에 출자를 두는 가문이 많았고, 반면 도고쿠에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씨(今川氏)나 가이의 다케다 씨(武田氏) 등 슈고 가문 출신뿐만 아니라 슈고 가문이 아니면서도 령국을 넓혀 성장한 사가미의 고호조 씨(後北条氏)나 간토 ・ 도호쿠 지방에서는 군 규모의 지배를 행했던 지역 세력이 분립하는 등 지역적인 특징이 있었다.
 
「센고쿠 다이묘」에 관한 연구는 패전 이후 일본에서 실증주의 사학이 심화되어 거기에 수반해 센고쿠 시대에 있어서의 슈고의 위치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이루어졌고 센고쿠 다이묘 권력의 배경에는 센고쿠 다이묘에 의한 전국법(戦国法)의 제정과 함께 슈고 권력의 존재가 지적되었으며, 가쓰마타 시즈오(勝俣鎮夫) 등에 의해 센고쿠 다이묘의 령국 지배를 하나의 「지역국가」로 보려는 시도를 행하였다.
 
한편으로 센고쿠 다이묘 연구에 대해 야타 도시후미(矢田俊文)、이마오카 노리카즈(今岡典和)、가와오카 쓰토무(川岡勉) 등은 센고쿠 다이묘 령국의 「지역국가」설을 부정하고 센고쿠 시대에 있어서도 무로마치 쇼군 체제나 슈고 권위는 존재했고 「센고쿠 시대」라는 개념을 15세기 반부터 개시된 무로마치 막부의 해체 과정으로 보고 16세기 초두에는 슈고 권력의 변질로 「센고쿠 다이묘」가 출현하지만 어디까지나 센고쿠 다이묘도 무로마치 쇼군 체제의 범위 내에 있다고 평가하며 센고쿠 시대의 슈고를 「센고쿠 시기의 슈고」로써 위치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