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대프랑스 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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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의 여러나라가 [[1792년]]부터 프랑스에 대항하여 수번의 군사동맹을 맺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왕정 전복과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유럽 여러나라의 지도자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프랑스 공화국을 타도하려는 서약을 맺는다. 하지만, 오히려 프랑스에 패배하여 혁명정부의 세력확장과 종속국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는 꼴이 되었다. 이런 프랑스의 군사적 성공은 그들의 뛰어난 사령관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1799년]] 나폴레옹은 성공적인 [[쿠데타]]로 프랑스의 제1집정에 올라으며 5년뒤 황제에 즉위하였다.
 
초기의 혁명 정권과의 주변국의 마찰 만큼이나 나폴레옹 정권과도 불편한 관계는 계속되었다. 나폴레옹에 반대하는 새로운 군사동맹에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군대는 계속적으로 유럽을 정복해 나갔다. 그러나, [[1812년]] 프랑스의 [[러시아 정벌원정]] 실패 이후, 전쟁양상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해, [[제6차 대프랑스 동맹]]동안, 동맹국의 군대는 프랑스 군대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격파하였다.
 
그 승리후, 동맹국들은 나폴레옹을 황제의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한 파리로의 진격을 서약하였다. [[1814년]] 2월의 마지막 주에 프로이센의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가 이끄는 군대가 선봉으로 파리로 진격하였다. 나폴레옹의 두 육군 원수인 [[에두아르 모르티에]]와 [[오퀴스트 마르몽]]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부대를 파견하였다. 하지만, 단지 10,000명의 병력으로 블뤼허의 대부대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른 강]]에서 블뤼허가 책략에 걸려들길 바라면서 나폴레옹은 약 30,000의 부대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서둘러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