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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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感恩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龍堂里) 55-1번지 일원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인 감은사의 터 및 초석과 쌍탑등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1호 및 국보 제112호등으로 지정되었다.
 
== 역사 ==
[[신라]]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나라를 더욱 굳게 지키기 위해 이 절을 짓기 시작했으며 신라 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즉위한 이듬해(682)에 완공하고 문무왕은 승려 지의(智義)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 앞바다에있는 [[대왕암]](大王巖)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ref>(위키문헌-삼국유사 만파식적조)</ref><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sForTopPageNavi?keyword=&ridx=2&tot=20&id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깨진 링크|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sForTopPageNavi?keyword=&ridx=2&tot=20&ids= }}</ref>
 
==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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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Gamunsaji-base.svg|thumb|400px| 감은사 초석의 기하학적 태극문양 원(圓) 및 삼각형 방(方)]]
[[File:Gamunsaji.svg|thumb|600px| 감은사 터 개략도]]
감은사는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사용했으며, 금당과 동서 회랑 사이에 익랑을 둬, 이후 건립된 사천왕사 배치에 영향을 주었다. 감은사는 [[황룡사]]와 [[사천왕사]]와 함께 호국사찰이었다.<ref>{{웹 인용|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A%B0%90%EC%9D%80%EC%82%AC%EC%A7%80&ridx=0&tot=2513|제목=경주감은사지(慶州感恩寺址)|성=|이름=|날짜=|웹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출판사=|언어=ko|확인날짜=2018-06-17}}</ref> 한편 감은사의 현재 주변은 세월이 지나면서 육지화되었으나 감은사가 세워질 당시 약1300년전에는 감은사앞까지 동해앞 바다물이 들어오던 상황이었다상황을 짐작할수있는 배수시설이 확인된다.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 감은사 복원 모형체가 있다.
 
==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