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일제 강점기: 오타를 고침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편집 요약 없음
19번째 줄:
== 역사 ==
=== 러시아 정교회의 한반도 선교 ===
 
==== 정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다. ====
[[19세기]] 말엽 [[조선]]에 들어와 있던 [[러시아 제국]] 군인 약 90명과 민간인 약 30명은 러시아 공사관에 모여 [[성직자]] 없이 주일과 축일에 기도와 찬양으로 [[성사]]를 대신하면서 생활했으나 사제가 없어 태어나는 자녀들에게 [[세례]]할 수가 없었고 [[성체성혈성사]]로써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을 수가 없었으며 죽은 사람을 [[장례]]할 수가 없어 주조선 러시아 공사관 직원 폴랴놉스키는 [[1897년]] [[1월 3일]] 본국에 [[조선]]에서 사목할 성직자를 파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줄 25 ⟶ 27:
[[1900년]] [[2월 17일]] 제2차 선교회장 [[대수도사제]] 흐리산프 솃콥스키(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와 봉독자 이오나 렙첸코(Иона Левченко)가 입국했으나 [[한성]]에는 [[성찬예배 (동방 교회)|성찬 예배]]를 집전할 정교회 [[성당]]이 없어서 독실한 정교신도였던 주한 러시아 공사가 제공한 관저를 임시 성당으로 꾸미고 [[1900년]] 2월 17일 성 테오도로스 대순교자 축일에 [[성수 (기독교)|성수]]로 축성(祝聖)되고 한반도에서의 첫 성찬예배가 봉헌됐다.
 
==== 정교회 성 니콜라스 성당. ====
초대 선교사 흐리산프 솃콥스키(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 신부는 정교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교리 학습을 시작하면서 한국인들에게 한국어로 된 교리서와 예배서가 필요한 사정을 절감했지만, 교회 슬라브어를 한국어로 직역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국 정교회]] 측에 요청해 중국어 정교 서적들을 입수하고 러시아어와 한국어에 러시아 국적 한인들을 통하여 예배서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십계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노력 덕분에 신자 수가 점증해 러시아 공사관에 마련된 임시 성당은 신자들을 수용하기에 협소해 1903년 4월 17일 [[대한제국 고종]]에게서 매입한 [[정동]] 부지에 성당을 건립했다. 이곳 정동에 건립된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1967년 현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으로 이전하기까지 한국에서 정교회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 재러 조선인 신자들. ===
한편 조선 말기인 19세기에 적잖은 조선인이 [[삼정의 문란]]에 따른 궁핍과 기아를 피해 국경을 넘어 러시아의 [[연해주]] 일대에 정착해 체류하기 시작했는데시작했다. 실제 1880년 러시아 사람이 연해주에서 사는 조선사람들이 쓰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글과 러시아말로 쓴 이중어[[사전]]을 출간했으며, [[독립운동가]]인 최재형 선생도 1867년 러시아 연해주로 이민한 조선사람의 아들이다 . 러시아는 연해주에서 살던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례성사를 받게 했다.
 
=== 일제 강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