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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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풍회 ====
{{본문|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추풍회 후보 선출}}추풍회는 1963년 9월 11일 전당대회를 열고 오재영 전 의원을 대통령 후보에 만장일치로 추대하였다.
 
== 선거의 의미 ==
이 선거는 [[5·16 군사 정변|5·16 군사쿠데타]]의 심판 성격이 강했으며, 이 선거를 통하여 박정희는 군사 정변을 통해 장악한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남여북야(南與北野)의 지역 대결 구도를 나타냈다.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서는 윤보선을, [[영남]]과 [[호남]]에서는 박정희를 압도적 표차로 지지하였다. [[충청]]과 [[부산]]에서는 두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비슷했다.
 
안보 문제에 민감한 강원도 등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는 윤보선이 승리했으나, 남쪽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야당 강세 지역도 내어주게 된 것이다. 한국민주당의 아성으로, 제1·2공화국 내내 민주당계 보수 정당의 텃밭과도 같았던 호남에서 진보 개혁 세력의 지지를 받은 박정희가 승리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는데, 이는 여수·순천 사건 등으로 색깔론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데다 혁명 정부의 중농정책이 농업이 발달한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데 주효했던 탓으로 분석되었다.<ref name=":0">{{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about/%ED%95%9C%EA%B5%AD_%ED%98%84%EB%8C%80%EC%82%AC_%EC%82%B0%EC%B1%85_1960%EB%85%84%EB%8C%80%ED%8E%B8_2.html?id=UXvhBAAAQBAJ&fbclid=IwAR0aOJBhf45Eiu--R5HuP9sEKdLJu2wjpMj5oo4CBsdVDniIqUUsn5XrNmQ|제목=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성=강준만|날짜=2004-09-23|출판사=인물과사상사|언어=ko|isbn=9788988410998}}</ref>
 
혁신계 세력이 많은 영남, 특히 한국전쟁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본 경남 지역 역시 박정희에 대한 윤보선의 사상 공격이 포항과 경주 등 한국 전쟁의 피해가 컸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선거전 중에 윤보선이 사상 문제를 제기한 직후 여론조사를 돌린 결과 박정희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가긴 했으나 좌익 유권자가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급상승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ref name=":0" />
 
== 선거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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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청|0|3}} 3,006||{{막대|친박|7|0}} 81,422||{{막대|갈|0|3}} 3,859||{{막대|황|2|2}} 26,009||{{막대|자|0|2}} 2,207||{{막대|친박|7|0}}{{막대|황|2|2}}{{막대|갈|0|3}}{{막대|청|0|3}}{{막대|자|0|2}} 116,503
|}
 
== 선거의 의미 ==
이 선거는 [[5·16 군사 정변|5·16 군사쿠데타]]의 심판 성격이 강했으며, 이 선거를 통하여 박정희는 군사 정변을 통해 장악한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남여북야(南與北野)의 지역 대결 구도를 나타냈다.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서는 윤보선을, [[영남]]과 [[호남]]에서는 박정희를 압도적 표차로 지지하였다. [[충청]]과 [[부산]]에서는 두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비슷했다.
 
안보 문제에 민감한 강원도 등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는 윤보선이 승리했으나, 남쪽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야당 강세 지역도 내어주게 된 것이다. 한국민주당의 아성으로, 제1·2공화국 내내 민주당계 보수 정당의 텃밭과도 같았던 호남에서 진보 개혁 세력의 지지를 받은 박정희가 승리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는데, 이는 여수·순천 사건 등으로 색깔론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데다 혁명 정부의 중농정책이 농업이 발달한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데 주효했던 탓으로 분석되었다.<ref name=":0">{{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books/about/%ED%95%9C%EA%B5%AD_%ED%98%84%EB%8C%80%EC%82%AC_%EC%82%B0%EC%B1%85_1960%EB%85%84%EB%8C%80%ED%8E%B8_2.html?id=UXvhBAAAQBAJ&fbclid=IwAR0aOJBhf45Eiu--R5HuP9sEKdLJu2wjpMj5oo4CBsdVDniIqUUsn5XrNmQ|제목=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성=강준만|날짜=2004-09-23|출판사=인물과사상사|언어=ko|isbn=9788988410998}}</ref>
 
혁신계 세력이 많은 영남, 특히 한국전쟁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본 경남 지역 역시 박정희에 대한 윤보선의 사상 공격이 포항과 경주 등 한국 전쟁의 피해가 컸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선거전 중에 윤보선이 사상 문제를 제기한 직후 여론조사를 돌린 결과 박정희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가긴 했으나 좌익 유권자가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급상승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ref name=":0" />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