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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파별 성사의 구분 ==
=== 동방정교회 ===
[[동방정교회]]는 성사에 공식적인 교리로 숫자를 제한하지 않으나 교회의 전통을 존중한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담은 성사와 성사적인 것, 즉 준성사를 구분하지 않는다<ref>메이엔도르프. 《비잔틴 신학: 역사적 변천과 주요교리》. 박노양 옮김. (서울: 정교회출판사, 2010) 376.</ref>. 9세기 스튜디뜨는 거룩한 조명, 세례, 집회, 성만찬, 견진, 서품, 수도서원, 장례식의 6개를 성사로 구분하였고, 13세기 서방교회의 글레멘트 4세가 동의를 요구한 신앙고백서에 세례, 견진, 성만찬, 신품, 결혼, 고백, 성유(병자)성사 7가지 성사가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7가지 숫자가 같기는 하였지만 13세기에 성사를 세례, 견진, 성만찬, 신품, 결혼, 성유, 수도서원 성사의 일부 내용이 다른 이해도 존재했으며, 15세기에는 시메온이 수도서원과 고백성사를 통합하고 성유성사를 추가하였다. 15세기 인물인 요아삽은 교회축성, 장례, 수도서원을 포함하는 10개의 성사를 제시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는 세례와 성만찬만에만 구원이 뿌리내렸다고 주장하였으며, 니콜라스 카발실리스는 세례, 견진, 성만찬만이 진정한 성사라고 주장하였다.
 
정교회의[[동방정교회]]의 성사는 7개의 성사를 전통으로 받아들이기는 하나 서방교회가[[로마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성사 유사하거나내용과 일부 다르기도 하며, 신학적 견해에 따라 10개의 성사로 구분하기도 하고, 세례와 성만찬만을성만찬을 전정한 성사로성사로만 인식하는 전통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동방정교회는[[동방정교회]]는 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따르지만, 교리적으로 성사의 종류를 공식적으로 제한하지 않았다<ref>메이엔도르프. 《비잔틴 신학: 역사적 변천과 주요교리》. 박노양 옮김. (서울: 정교회출판사, 2010) 376-377.</ref>.
 
=== 로마가톨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