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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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충무위 부사과를 지내고 후일 증 영의정으로 [[추증]]된 [[최효원]](崔孝元)과 남양홍씨의 딸로서 [[1670년]] [[12월 17일]](음력11월 6일)에 태어났다.<ref>출처 《숙빈 최씨 신도비명(淑嬪崔氏神道碑銘)》</ref> [[1936년]] [[장봉선]] 등이 편찬한 [[정읍군지]]에 의하면 숙빈 최씨는 [[정읍현]] [[태인면]]에서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다 한다. 그때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 [[민유중]]이 [[영광군 (전라남도)|영광]]군수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태인의 대각교에서 남루한 소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민유중]]의 부인 송씨가 불쌍히 여겨 데려다 키웠고, 인현왕후가 왕비를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할 때 대동시켰다고 한다.<ref name="leesu">이영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62페이지</ref> 다른 설에 의하면 숙빈의 고향은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 마을이라고도 한다.<ref name="leesu"/> 그러나 외할아버지 홍계남(洪繼南)이 [[한성부|한성]] 출신이었다 한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숙빈최씨가 태어난 곳은 [[여경방 서학동]][[(현재의 서울 세종로 일대)]]이다. 서학동은 말 그대로 서부의 학교 서학이 있는 동네로서 여경방에 속한 곳이었다. 영조는 이 곳 생가에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과 외조부 홍계남의 자손이 대대로 살면서 팔지 못하게 했으니 꽤나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숙빈최씨를 위해 별도의 사당 육상궁(毓祥宮)을 세우고 시호(諡號)를 올리는 등 추숭 작업을 마무리 한 뒤에 뒤늦게 생가 복원을 꾀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있다. 육상궁이 경복궁의 서북쪽인 북부 순화방에 있었으므로 가까운 거리에 생가를 두고자 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