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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렇다면 [탐수면은] 어느 때 존재하는 것인가?
<br>그것이 잠자고 있을 때에 존재한다.<sup style="color: blue">16)</sup> 혹은 원인에 대해 수면이라는 말[想]을 일시 설정한 것이다.<sup style="color: blue">17)</sup>
<br><sup style="color: blue">5)</sup> 이하 욕탐수면의 본질[體]을 둘러싸고 유부·대중부·경부의 대론이 펼쳐지고 있다. 욕탐수면을 '욕탐이 바로 수면'이라는 지업석(持業釋, 동격복합어)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욕탐의 수면'이라는 의주석(依主釋, 한정복합어)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만약 전자라면 욕탐은 현행하는 것이므로 수면 역시 현실의 번뇌로서 번뇌의 다른 이름일 뿐이지만, 후자라면 수면은 욕탐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심·심소와는 별도의 실체여야 한다. 유부의 경우 욕탐의 본질은 탐·진과 마찬가지로 수면이고, 그것은 바로 현행의 번뇌인 전(纏, paryavsth na) 즉 심상응법의 하나로 해석하고 있지만, 대중부의 경우 현행의 번뇌인 욕탐을 야기하는 불상응행법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대해 경부에서는 수면을 번뇌종자의 뜻으로 해석하여, 번뇌가 잠자고 있는 상태를 수면, 깨어 활동하고 있는 상태를 '전'이라고 하였다. 곧 '번뇌종자인 수면은 심상응도 아니고 불상응행도 아닌 마음 자체의 차별공능이다'고 논의함으로서논의함으로써 유부와 대중부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논주 세친에 의해 선설(善說)로 평취되고 있다.
<br><sup style="color: blue">6)</sup> 출처불명. 즉 이 경에서는 욕탐전 이외 수면을 따로이 언급하고 있으므로 욕탐과 수면은 개별적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br><sup style="color: blue">7)</sup>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6(한글대장경176, p. 130), '7수면 중의 욕탐수면 등은 고근(苦根)을 제외한 네 가지 근과 상응한다.' 그럴 경우 욕탐수면은 상응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