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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12월 23일]] 프랑켄 공작이자 동프랑크의 왕 [[콘라두스 1세]]가 사망하였다. 하인리히는 912년~915년 [[콘라두스 1세]]와 [[튀링겐]] 땅을 차지하는 일을 놓고 경쟁하다가 두 번 전쟁을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콘라두스 1세와 화해하게 된다. 한편 아들이 없던 [[콘라두스 1세]]는 자신의 동생 대신 하인리히를 차기 국왕으로 내정하고 사망했다. 작센 족 역사가 비두킨트에 의하면 콘라트는 죽음을 앞두고 왕의 상징인 휘장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 에버하르트에게 하인리히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이행할 것을 다짐받았다고 한다.
 
그는 프랑크 족 출신이 아닌 첫번째 군주였다. 그가 즉위함으로서즉위함으로써 동프랑크의 군주는 [[프랑크족]]에서 [[작센 족]]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에 따라 후대의 학자들은 프랑크 왕국이 아닌 독일 왕국의 출발점을 하인리히 1세로부터 찾게 된다.
 
=== 독일의 군주 ===
특히 나쁜 공작 또는 악마 공작이라는 별명의 [[바이에른]] [[공작]] [[아르눌프 (바이에른 공작)|아르눌프 대머리]]와는 [[921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하였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영지 중 [[라티스본]]을 [[바이에른]] [[공작]] [[아르눌프 (바이에른 공작)|아르눌프]]에게 양도하는 대신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바이에른 공작 아르눌프는 이를 거절했다.
 
[[919년]] 일부 귀족들은 [[바이에른]] [[공작]] [[아르눌프 (바이에른 공작)|아르눌프]]를 왕으로 선출하였다. 이후 두 차례의 전쟁 끝에 921년 바이에른을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바이에른]] [[공작]] [[아르눌프 (바이에른 공작)|아르눌프]]는 자치권과 자신의 얼굴을 새긴 [[동전]]을 독자적으로 발행할 권리를 추가로 요구했고, 하인리히 1세는 이를 승인함으로서승인함으로써 전쟁은 종결되었다. [[슈바벤]]의 [[부크하르트 2세]]도 하인리히 1세에게 일단 충성을 맹세했지만 계속 반발하였고, 하인리히 1세는 계속 다른 귀족을 슈바벤 공작으로 임명하려고 암암리에 시도하였다. [[부크하르트 2세]]가 죽자 하인리히는 다른 귀족을 [[슈바벤]] 공작에 임명한다. 그밖에도 [[프랑크 족]] 역시 그를 국왕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귀족들과의 불화는 그의 즉위의 정당성 및 왕국의 안정에 위협적이었고, [[마자르 족]]의 잇단 침략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920년대 내내 하인리히는 마자르 족의 거듭된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