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 바이트 제거됨 ,  1년 전
462년,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조충지는 이 『대명력』을 조정에 바쳤다. 효무제는 역법을 아는 관원들을 모아서 『대명력』의 채택 여부를 논하게 했다. 그리하여 혁신파와 보수파 간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그러자 조충지는 실제적 이론과 투철한 견해로 많은 대신들을 설득시켰다. 그 결과 효무제는 연호를 고칠 때 『대명력』의 실시를 전국에 공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효무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명력』은 조충지가 세상을 뜬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전국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다. 효무제가 죽고 나서 얼마 후에 송나라 금위군을 관할하는 소도성(蕭道成)이 정변을 일으켜서 송나라를 멸망시켰다. 소도성은 479년에 즉위하여 남제(南齊)를 건립했는데 그가 바로 고제(高帝)이다.
 
===수학적 업적===
 
조충지의 뛰어난 수학적 업적 중 하나는 [[[원주율]]]의 값을 소수점 아래 6자리 까지 정확히 계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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