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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시아노가 교황이 되었을 때, 당시 로마 황제는 기독교에 대해 온건한 입장이었던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독교는 평화를 누릴 수가 있었다. 폰시아노는 로마의 주교인 교황으로서 로마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에서 두 차례나 공포한 [[오리게네스]]의 정죄(데메트리우스 주교가 오리게네스의 사제 서품을 무효라고 선언한 사실을 말함)를 재확인하였다.<ref name="ce"/>
 
로마 제국의 새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선대 황제인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와는 달리 기독교에 대하여 강경한 정책을 펼쳤다. 교황 폰시아노는 [[대립 교황대립교황]] [[로마의 히폴리토]]와 함께 체포된 후 로마에서 추방당하여 [[사르데냐]] 광산에서 광부로 노역하며 유배 생활을 보냈다.<ref>G. W. Clarke, "Some Victims of the Persecution of Maximinus Thrax," ''Historia: Zeitschrift für Alte Geschichte'', Bd. 15, H. 4 (Nov., 1966): pp. 445-453, p. 451.</ref> 유배형을 선고받은 폰시아노는 베드로좌의 공백을 하루속히 메우기 위해 서기 235년 9월 28일에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났다. 유배지에서 폰시아노는 히폴리토와 화해했으며, 이로써 로마 교회의 분열은 종식되었다. 폰시아노와 히폴리토는 모두 끝내 살아서 로마로 돌아오지는 못하였다. 폰시아노는 235년 10월에 선종하였다.<ref>Richard P. McBrien, ''Lives of the Popes'' (San Francisco: Harper Collins, 2000), 45.</ref> 사후 [[성인 (종교)|성인]]으로 [[시성 (기독교)|시성]]되었으며, 축일은 8월 13일이다.
 
서기 236년 혹은 237년 [[교황 파비아노]]에 의해 폰시아노와 히폴리토의 시신이 모두 로마로 운구되어 [[아피아 가도]]에 있는 [[성 갈리스토 카타콤바]]의 교황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폰시아노 교황의 무덤 석관은 1909년 발굴 조사에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