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반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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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은 11월 중순부터 [[정승화]] 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회]]를 비롯한 동조 세력 규합에 나섰다. [[허화평]] 보안사령부 비서실장, [[허삼수]] 보안사령부 인사처장, [[이학봉]] 보안사령부 수사과장, [[장세동]] 제30경비단장, [[김진영]] 제33경비단장 등 영관급 후배의 동조를 얻어 모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11월 말 경 [[전두환]]은 [[황영시]] 제1군단장, [[노태우]] 제9사단장, [[백운택]] 제71방위사단장, [[박희도 (1934년)|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1, 3, 5공수특전여단장 등 선후배 동료 장성과 거사를 협의했다. [[12월 8일]] [[전두환]]은 [[이학봉]] 중령으로부터 [[정승화]] 총장은 일과시간 후 총장 공관에서 연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첨부된 세부계획서를 전달 받고, 이를 확정한 후 허삼수와 [[우경윤]]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다.<ref>재향군인회, 12.12 5.18 실록</ref>
 
[[12월 12일]] 오후, 전두환은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차규헌]], [[노태우]], [[황영시]] 등 규합한 동조세력을 장세동이 있던 경복궁 내 수도경비사령부 여하 제30경비단 단장실로 모이도록 한 후 시내 일원을 장악하기로 한 계획을 지시, 논의했다.
 
같은 날 18시,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 체포안에 대한 재가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와 동시에, 전두환의 지시를 받은 허삼수, 우경윤은 정승화 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했다. 19시, 이들은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50명을 투입했다. 33헌병대 병력은 공관을 경비하던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병력을 제압하고 공관에 난입했다.<ref>http://m.nocutnews.co.kr/news/1148681</ref> 이후 공관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반란군측 [[박윤관]] 일병이 사살당했다.<ref name="사병">{{뉴스 인용|저자=고나무·김선식|제목=잊혀진 죽음, 정선엽·박윤관 두 사병도 기억하라|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8473.html|날짜=2013년 5월 21일|확인날짜=2016년 2월 2일|출판사=한겨레}}</ref> 19시 21분, 반란군은 정총장을 [[국군기무사령부|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21시 30분경, 전두환, 유학성, 황영시 등은 다시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 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