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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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친왕 [[지르하란]](鄭親王 濟爾哈朗) - 누르하치의 아우 [[슈르하치]]의 6남, 홍타이지의 사촌동생.
* 예친왕 [[도르곤]](睿親王 多爾袞) - 누르하치의 14남, 홍타이지의 이복동생.
* 숙친왕 [[후거호오거]](肅親王 豪格) - 홍타이지의 장남.
* 영군왕 [[아지거]](英郡王 阿濟格) - 누르하치의 12남, 홍타이지의 이복동생.
* 예군왕 도도(豫郡王 多鐸) - 누르하치의 15남, 홍타이지의 이복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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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 </ref> 두 사람 다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공이 컸으나 조정에서의 위치는 도르곤이 후거보다호오거보다 위였다. 비록 후거가호오거가 도르곤보다 나이는 많았다 하나 도르곤은 후거의호오거의 숙부였고 팔기군 중 정예부대인 정백기와 양백기를 거느리고 있어 그 위세가 막강하였다.
 
도르곤의 당여들은 만주족의 전통적인 승계방식인 형제승계를 따라 도르곤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 주장하였으나, 후거는호오거는 형제승계가 아닌 부자승계로 황제를 뽑아야 한다며 도르곤의 의견을 반박했다. 도르곤은 이에 부자승계에 동의하는 대신 숭덕제의 정식 후비(后妃)인 오궁(五宮) 소생 중 장남인 9황자 복림이 황위에 오르고 또한 도르곤 자신과 후거를호오거를 지지하는 정친왕 지르하란을 각각 좌우 섭정왕으로 삼아서 정무를 보는 조건을 내걸었다.<ref name="염숭년"/> 후거와호오거와 의정왕대신회의를 주관하던 예친왕 다이샨은 도르곤의 절충책에 동의하였다. [[1643년]](숭덕 9년) 10월 8일, 푸림은 성경 고궁 대정전(大政殿)에서 겨우 6세의 나이로 황위에 오르니 이가 제3대 황제 순치제이다.
 
그가 즉위하게 된 것은 강력한 외가와 숙부 도르곤이 강력하게 추천한 덕분이었다. 도르곤은 [[1644년]](순치 원년, [[명나라|명]] 숭정 17년)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죽고 명나라가 멸망하자, 투항한 명나라의 장수 [[오삼계]]의 도움으로 [[산해관]]을 넘어 함께 [[이자성]]을 공격, 어부지리로 중국 대륙을 거의 통일하였고, 명의 수도 [[북경]]에 들어가 자신들이 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조라고 선포하였다. 중국 대륙을 점령한 청나라의 첫 황제가 되었다. 도르곤은 이자성을 추포하라 명령, 이듬해인 [[1645년]](순치 2년) 이자성은 쫓기는 도중 살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유언비어며 실제 《청세조실록》(淸世祖實錄)에 관련 기록을 보면, 탈출이 어려워지자 이자성이 자결한 것으로 나온다. [[1650년]] [[도르곤]]이 병으로 죽자 순치제는 비로소 청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